243억 파운드, 35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주고도 "싸게 사서 기쁘다"고 한 사람이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기업은 영국의 반도체 칩 디자인 회사 'ARM'이다. 35조원이 얼마나 크냐 하면, 2017년 1월말 기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비싼 현대자동차(시가총액 31.4조원)를 사고도 3조6000억원이 남는 돈이다.
작년 7월 18일 ARM 인수를 발표한 소프트뱅크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관문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돌진하고 있다. 퀄컴, 인텔 등 반도체 칩 관련 경쟁기업은 물론 지멘스, 구글, 애플, 아마존 등 4차 산업혁명의 선도기업들까지 깜짝 놀랐다. ARM은 애플, 삼성, 화웨이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을 디자인하고 있으며, 스마트폰용 칩보다 더 작고 전력소모가 적은 사물인터넷(IoT)용 칩 디자인에 있어서도 가장 앞서가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10년 전부터 이 회사를 주목하고 있었다"고 한 이유도 바로 사물인터넷의 장미빛 성장 전망 때문이었다. 스마트 가전, 스마트 홈, 스마트 빌딩은 물론 스마트 카(자율주행차)의 미래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도 사물인터넷 관련 칩의 기하급수적 성장에 기여할 것이다. 주니퍼(Juniper Research)에 따르면,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된 디바이스의 규모가 2015년 134억 개에서 2020년 385억 개로 3배가량 커질 전망이다. 따라서 사물인터넷이 확산되면 될수록 ARM의 수입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되어 있었다. 사물인터넷과 4차 산업혁명의 큰 흐름을 간파한 소프트뱅크가 관련 핵심 기업(ARM)을 선점한 것이다. 마이더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손정의 회장이 "35조원도 싸다"고 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손정의 회장의 승부사 기질은 고교 시절부터 발휘되기 시작했다. 후쿠오카의 고교 재학시절에 미국 어학연수를 갔다 오더니 일본에서의 고교 졸업을 과감히 포기해버렸다. 미국으로 일찍 유학을 가서는 18세에 성(姓)을 '야스모토'에서 '손(孫)'으로 바꿔버렸다. 버클리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과학을 공부하면서 IT산업과 인터넷의 미래에 눈을 떴다. 매일 한 개의 특허를 출원한다는 목표로 사업 아이디어 발굴에 몰두했고,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해주는 장치를 개발하여 100만 달러에 팔기도 했다.
1981년 그의 나이 스물네 살 때 후쿠오카에서 소프트뱅크를 창업했고, 4년 만에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의 일본 독점판매권을 획득하면서 일본 최고의 소프트웨어 유통회사로 자리 잡았다. 2000년 중국 알리바바에 투자한 2000만 달러는 2014년 578억 달러(약59조 원)로 2890배나 커졌다. 잭팟이었다. 모바일의 미래를 보고 '보다폰 재팬'을 설립하여 이동통신서비스에 진출했다. 애플의 아이폰을 독점판매하면서 NTT도코모, KDDI 등 오래된 선발주자들을 제쳤다. 겅호, 수퍼셀 등 게임회사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콘텐츠 분야에서도 앞서가는 회사가 되었다.
최근에는 '페퍼로봇'이라는 개인맞춤형 로봇을 선보이면서, 인공지능(AI) 분야에도 진출했다. 그리고 작년 말 미국의 트럼프 당선자를 만나 "500억 달러 투자, 5만 명 일자리 창출"이라는 통 큰 약속을 하기도 했다. 그의 꿈과 도전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에는 소프트뱅크가 실리콘밸리의 흐름을 주목해 왔다면, 이제는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업들이 소프트뱅크의 움직임을 주목할 정도가 되었다. 모바일, 콘텐츠,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정보통신(ICT)과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선도할 유망사업 포트폴리오를 탄탄하게 완성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소프트뱅크의 미래를 주목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우리의 삼성, 현대車, SK, LG 등 소위 빅4 그룹은 어디만큼 따라가고 있는지 아득하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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