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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너무 느리게 생각하고 너무 급하게 돌진하는 코뿔소/유계영

시계아이콘00분 53초 소요

키우던 개의 이마에 뿔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너무나 날카로웠기 때문에 개는 외로워졌다


나는 아끼던 개를 개집에 가두고
검색창에 개의 뿔이라고 적었지만

그것에 대해 아는 자가 없었다


뒤뜰에 핀 장미 넝쿨에서 가시를 꺾어
내 콧잔등에 붙였다

사각형의 액자 속에서 사각형의 꿈들이
모서리를 긁적이며
거침없이 굴러다녔다


장미의 계절이 지나도
계속해서 코뿔소가 태어났다
코뿔소가 죽은 자리에 장미 덤불이 뒹구는 것과는
다른 일


모든 것이 뿔이게 되었고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을
겨냥하게 되었으므로


조심스럽게 말해야만 했다
나 너 같은 애 알아


[오후 한詩] 너무 느리게 생각하고 너무 급하게 돌진하는 코뿔소/유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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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직접 지면에 밝혀 둔 바에 따르자면, "너무 느리게 생각하고 너무 급하게 돌진하는 코뿔소"는 페터 빅셀의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서 차용한 문장이다. 페터 빅셀의 이 소설은 비록 짧기는 하지만 쉽게 요약하거나 한마디로 그 의미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 시 또한 그러한데, 나는 다만 저 마지막 연이 내내 마음에 걸려 다시 읽고 다시 읽고 그랬다. 우리는 정말이지 그것이 개든 사람이든 혹은 무엇이든 "나 너 같은 애 알아"라고 얼마나 자주 함부로, 뾰쪽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말해 왔던가. "모든 것이 뿔이게 되었고/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을/겨냥하게" 된 우리. 이렇게 된 사정의 연원을 가만히 따져 보자면, "키우던 개의 이마에 뿔이 돋아"났기 때문이거나 그것이 "너무나 날카로웠기 때문"이 아니라, "아끼던 개를 개집에 가"둔 채 "검색창에 개의 뿔"이라고 적고 검색하는 일부터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니 "뒤뜰에 핀 장미 넝쿨에서 가시를 꺾어" 콧잔등에 아무리 붙여 본들 "이마에 뿔이 돋아"난 개의 그 외로움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시는 묘하게도 자꾸 읽다 보면 첫 연에 적힌 저 개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참 외로워진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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