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작가, 출판노동자 등 대한민국 출판에 헌신해온 주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박근혜 정부의 불법적 탄압을 규탄하고 나섰다.
한국작가회의,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은 12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 18층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출판계 블랙리스트 책임자를 전원 구속하고, 엄중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뜻을 함께 하기로 했던 한국출판인회의는 이날 불참했다.
최근 보도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출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 지원배제를 지시했고, 국정원도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에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박근혜의 청와대는 문화 융성 가면 뒤에서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는데 몰두해왔다”면서 “헌법 21조(출판의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한 불법행위다”라고 규정했다.
이날 참석한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문화융성이라는 그럴듯한 구호를 내세웠지만, 정부가 한 일은 쪼잔하기 이를 데 없다. ‘블랙리스트’라는 무서운 말이 일상 언어처럼 되고 있다. 정부는 어떤 분야든 탄압하고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 민주사회가 되기 위해서 그러한 면을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법이 부여한 합법적 권력을 뛰어넘어 폭력적인 방법으로 여러 분야를 탄압해왔다.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와 정부의 불법적 탄압으로 출판계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문화 권력을 장악한 박근혜 정부와 관련한 부역자들은 처벌받아 마땅하다.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했다.
앞서 특검을 통해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을 비롯한 전직 청와대·문체부 핵심 인사 3명이 구속됐다. 이에 직접 지시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현 문체부 장관 등도 하루빨리 구속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한 이들 단체는 그동안 나온 국정농단과 무관하게 블랙리스트 자체만으로도 별도의 탄핵사유가 되는 만큼 이번 대통령 개입 행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반드시 탄핵 결정문에 적시해줄 것을 간곡히 촉구했다.
박세중 언론노조 서울경기출판지부장은 “출판노동자로서 참담하고 끔직한 마음이다. 새해벽두부터 업계 2위 업체가 도산하면서 그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많은 출판사들이 연쇄 도산했다. 정부는 이 문제를 사실상 방치해왔다. 이번 사태는 정부가 방조한 인재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진흥원에 쇄신을 요구했지만, 응답은 없고 오히려 낙하산 인사를 했을 뿐이다. 출판사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출판계는 늘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노사합의 보다 회사가 어려우니 나가라는 말만 나온다. 출판계 상생을 위해 노동자들과 함께 노사정 공동정책협의회를 제안했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관심 속에서 출판 생태계는 말라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하는 기자회견문 전문
<기자회견문>
‘출판의 자유’ 말살 책임자들을 전원 구속, 엄중 처벌하라 !
새해 벽두부터 송인서적 부도 사태로 출판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지원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출판을 진흥 영역이 아니라 검열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겨왔으니 대출 조건을 완화하는 것 외에 공공의 관점에서 출판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출판의 위기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따라서 출판계는 오랜 시간 제대로 된 출판 진흥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요구해왔다. OECD 가입 국가 최저 수준의 출판 예산에 불과하지만 현행 지원 제도들은 모두 출판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이마저도 불법과 편법으로 농단해 출판의 위기를 가중시켰다.
박근혜의 청와대는 문화 융성 가면 뒤에서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는데 몰두해왔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는 민생이나 국정 운영을 논하는 대신 끊임없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보복을 계획, 실행했다. “영화계 좌파 리스트를 작성하라”, “애국 영화를 지원하라”, “비판 언론은 발본색원해서 본떼를 보이라”,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이었다. 급기야 대통령이 출판사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지원 배제를 지시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심지어는 ‘채식주의자’로 세계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 강씨에게 축전을 보내자는 문체부의 요청을 거부했단다. 한 강씨는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로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 개입이 엄격히 금지된 국가정보원은 출판지원정책 심의?집행 기관인 출판진흥원 이사 선임에까지 개입했다고 한다. 대통령, 비서실장, 정무수석, 교육문화수석, 문체부 장관, 진흥기관, 정보기관이 총 동원돼 국가권력이 조직적으로 문화 다양성과 창작 자율성을 말살하려 한 것이다.
그들이 진흥을 내팽개치고 탄압에 전념하는 동안 출판계의 정책 제안과 요구는 철저히 묵살됐다. 문체부는 출판진흥원 구조 개편 요구에 전문성이 결여된 낙하산 인사 투하로 화답했다. 대규모 진흥기금 조성과 유통구조 개선, 출판 현장의 의견을 수렴한 중장기적인 진흥계획 수립 등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송인서적 부도와 이에 대한 무대책은 이처럼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과 정부 기관이 양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판의 위기 극복과 미래를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출판계를 둘러 싼 박근혜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책을 만드는 우리들은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특검은 이미 구속된 관련자들 외에 출판 블랙리스트 작성을 직접 지시한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의 불법 행위를 철저히 밝혀내고 엄벌에 처해야 한다.
아울러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출판 블랙리스트를 정책 현장에 집행하도록 주도한 출판문화진흥원장, 문화예술위원장 등 출판 정책 농단 부역자들은 출판인들과 국민 앞에 사죄하고 당장 사퇴하라. 특히 국가정보원의 진흥기구 인사 개입은 국정원법 위반이자 정보기관에 의한 국정농단인 만큼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에도 촉구한다. 탄핵 인용 결정 시 헌법 제21조 ‘언론?출판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한 박근혜의 위헌 행위를 적시해 다시는 권력이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우리 헌법 정신과 가치를 명확히 확인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권력의 검열과 간섭, 통제에 굴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와 문화 다양성, 창작 자율성이 구현되는 ‘진정한 문화 융성의 길’을 걸을 것이다.
2017년 1월 1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작가회의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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