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6차 촛불집회, 사상 최대 232만명 참여해 차갑지만 뜨거운 분노 표출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지난 3일 오후 열린 6차 촛불집회에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만 170만명, 전국적으로 총 232만명(주최측 추산ㆍ경찰 추산 43만명)이 참가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규모였다. 주최측 마저도 "장기간 지속된 촛불 집회에 시민들이 지쳤다"며 총 100만명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가 두 배가 넘는 시민이 몰리자 깜짝 놀랐다.
분위기는 일찍부터 심상치 않았다. 오후 1~2시부터 광화문 일대로 향하는 각 지하철 역들이 촛불집회 참가객들로 인산 인해를 이뤘다. 광화문 일대 12개 지하철역 일대에선 오후 2~3시 이후부터 오후 9시까지 거대한 인파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전국 70여개 각 지역의 촛불집회들도 부산 20만ㆍ광주 10만ㆍ대전 5만명 등 저마다 이날 최고기록을 갱신했다.
이처럼 많은 인원이 몰렸음에도 비폭력 평화 기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유지됐다. 사상 처음으로 법원의 허가를 받아 청와대 100m 앞 효자치안센터 등으로 진출해 장시간 시위를 벌였음에도 232만명 중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같은 평화적 시위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이다. 일각에선 "촛불시위로 정권이 평화적으로 교체되고 정치가 개혁되면 내년 노벨평화상은 따논 당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촛불 규모가 예상을 깨고 더욱 늘어난 것은 시민들의 분노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드러난 책임회피에 급급한 박근혜 대통령의 행태, 2일 탄핵 의결 무산 등 정치권의 지리멸렬, 일부 정치권과 소설가 이문열 씨 등의 촛불 비하 발언 등이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집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의 수위가 높고 엄중하게 진행되면서 9일 정치권의 탄핵안 가결처리를 압박했다. 여의도 정치권을 향한 직접적인 분노가 표출되기도 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최대 2만여명이 집결한 가운데 여의도 새누리당 앞에서 규탄 집회를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비박 진영의 탄핵 불참 움직임을 규탄하며 계란을 던지고 새누리당 깃발을 찢는 등 강렬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416개의 횃불이 등장해 거세게 불타올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경찰의 집회 금지로 사상 처음으로 도착한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오열을 하며 '박 대통령의 7시간' 진상 규명을 호소했다.
더욱 특별한 것은 분노의 열기 속에서도 촛불을 축제로 만드는 시민들의 수준 높은 집회 문화였다. 시민들은 변함없이 차분하게 집회에 참석해 질서를 지키면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광경을 연출했다. 이날 지하철 1ㆍ2호선 시청역, 5호선 광화문역, 3호선 경복궁역 등은 한꺼번에 수만명의 이용객이 몰리면서 발디딜틈 조차 없었다. 지하철에서 내린 승객들이 지상으로 올라가기까지 걷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떠밀려 올라갈 정도였다. 지상의 청와대앞~서울시청앞 서울광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누구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질서를 어기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촛불을 든 채 청와대쪽을 바라보며 행진하고, 때론 구호를 외치며 노래를 부를 뿐이었다. 청와대 100m 앞 효자동주민센터, 효자치안센터에서 밤 늦게까지 연좌농성이 벌어지긴 했지만 '국화꽃'만 난무했을 뿐 폭력사태는 없었다. 시민들은 촛불집회를 대한민국 전체의 2016년 '송년회'로 여기는 듯 했다.
이 같은 촛불의 열기는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탄핵을 청원하자는 '박근핵 닷컴'의 청원건수는 5일 오전 현재 77만1639건을 넘었다. 퇴진행동이 주최하는 오후 2시, 오후7시 청와대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도 강력해져 청와대 측이 "사법처리"를 경고하고 나설 정도다.
3번째 촛불집회에 참여한다는 시민 김모(43)씨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왔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데도 전혀 번잡하거나 어지럽다거나 위험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가 신기할 뿐"이라며 "다들 분노를 품고 있지만 엄숙하고 경건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촛불은 9일 국회 탄핵안 처리를 앞두고 주중 매일같이 밝혀진다. 퇴진행동 측은 앞으로 올해말까지 매일 오후7시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연 뒤 오후 10시까지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행진한다. 민주노총도 오는 6일 오후7시 여의도 전경련 앞에서 재벌기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연다. 특히 탄핵안 처리를 하루 앞둔 오는 8일 저녁부터 다음날까지 여의도 일대에서 가결을 압박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24시간 촛불 집회도 열릴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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