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서해에서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조업 중인 중국 어선들과 해경 사이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지난 7일 인천 소청도 앞바다에서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 '노영어(魯榮漁 0000호'가 단속에 나선 인천 해경 3005함 소속 고속단정을 들이 받아 침몰시키고 달아난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이후 해경이 폭력 저항시 함포 사용 방침을 밝히는 등 단속을 대폭 강화하자 한 중국 관영매체는 '세계에서 가장 흉폭한 해상 기관'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데 해경과 중국 어선들이 항상 이렇게 '원수'처럼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다. 해경은 조난당한 중국 어선과 선원들에겐 '천사'같은 존재다. 22일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해경은 지난해 18척 88명, 올해는 이달 13일 현재까지 7척 48명 등 2년간 25척 136명의 위험에 처한 중국 어선과 선원들의 목숨을 구해줬다.
심지어 고속단정이 침몰당하는 치욕을 겪은 지난 7일에도 해경은 제주도 차귀도 남서방 59해리 지점에서 중국 어선에서 발생한 환자 1명을 구했다. 지난 8월29일 인천 대청도 남서방 약 41해리 지점에서 화재가 난 중국 어선을 인천해경서 소속 해경 함정이 구조해 18명의 선원의 목숨을 구하는 등 수시로 발생하는 사고에 인도적인 의무를 다하고 있다.
이같은 해경의 선의에 중국 당국도 종종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지난 1월27일 오전 10시20분 중국어선 '노영어 57189호'가 전복된 사고였다. 해경은 즉시 중국 측에 상황을 통보하는 한편 신속히 경비함정과 항공기를 파견해 선원 2명을 구조했다.
이에 중국 해경국은 다음날인 1월28일 서한을 보내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구조활동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한ㆍ중 해경이 실무차원에서 협력을 강화하여 평화롭고 안전한 바다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라고 전해왔다.
지난해 12월3일 서해에서 발생한 중국 어선 'JING HAI YU 04882'호 화재 사고때도 해경은 인천 해경서 소속 3005함을 출동시켜 중국 선원 17명을 모두 무사히 구조했다. 이에 중국 해상구조센터는 공식 서한을 보내 "한국 해양경비안전본부의 높은 국제인도주의 정신과 신속한 구조로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어선들, 특히 무허가 불법 조업 어선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다. 해경 고속단정 침몰 사건만 해도 당시 불법조업 단속 중이었던 고속단정에는 조모(50ㆍ경위) 단정장이 남아 있었다. 자칫 생명을 잃을 뻔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조 단정장은 침몰 직전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인근에 있던 다른 고속단정에 구조됐다.
해경은 중국 어선의 행위가 사실상 살인 미수에 해당된다며 전국 해역에 수배령을 내리는 한편 중국 당국과 협력해 검거에 나섰지만 2주일이 넘은 22일 현재까지 감감 무소식인 상태다. 이미 페인트칠ㆍ수리를 끝낼 만큼 시간이 오래 지난 상태여서 검거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후 해경은 중국 어선들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해 수시로 불법 조업 혐의 어선을 나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도 전남 신안군 홍도 해상에서 무허가 불법 조업 중인 중국어선과 해경 사이에 살벌한 충돌이 일어났다. 중국선장이 나포하려던 해경단정을 향해 돌진해 충돌할 뻔했고, 이를 간신히 피한 해경은 더 이상의 기동을 막기 위해 중국 어선 조타실에 섬광폭음탄 3발을 던져 넣는 등 전쟁터를 방불했다. 결국 중국 어선에 불이나 선원 3명이 숨졌고, 해경은 어선 선장 양씨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문제는 중국 어민들의 저항은 날로 흉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쇠창살을 박아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고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손도끼와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는 일도 예사다. 이로 인해 2008년 9월 목포해경의 박경조 경위가 중국 선원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사망했고 2011년 12월에는 인천해경 특공대원 이청호 경사가 중국 선장이 휘두른 유리조각에 찔려 숨졌다. 2008년부터 올해 9월말 현재까지 중국어선 선원의 폭력저항에 숨진 해경은 2명, 부상자는 73명이나 된다.
해경은 2001년 한중어업협정 발효 후 불법 조업 단속과 처벌이 점점 강화되면서 영세 중국 어선들이 한 번 단속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저항을 더 강하게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전엔 중국 어선이 우리측 수역에서 연간 1만2000척이 44만t의 어획량을 기록했고, 우리 측은 그냥 두고 볼 수 밖에 없었다.
한중어업협정의 발효 이후엔 쿼터량이 매년 줄어들고 있고, 불법 조업 단속도 활발해졌다. 올해 현재 연간 1600척이 6만t 정도만 잡을 수 있다. 나머지는 불법 조업으로 단속되고 있다. 2007년 이후 1005척의 불법 조업 어선이 단속됐다. 단속될 경우 처벌도 담보금 2억원 등 크게 강화됐다.
그렇다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중국 어선들의 행태를 놔둘 수는 없다. 한국 정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실효성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우리 해역에서 불법 조업으로 잡은 해산물이 비싼 값에 역수입돼 백화점 등에서 '최고급 수산물'로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부터 막자.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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