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늪 축구'가 사라졌다. 축구대표팀의 수비는 지난해 1월 아시안컵과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까지 난공불락이었다. 하지만 최종예선부터는 다르다. 상대는 확실히 더 강한 상대. 중동팀들의 위협으로 불안해졌다.
이제 변화를 고려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수비수 세 명을 세우는 스리백도 고려해 봐야 한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62)은 수비수 네 명, 포백을 고집하고 있다. 전형도 4-2-3-1과 4-1-4-1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두 전형의 차이는 기성용(27·스완지시티)을 올리고 내리고 차이가 있을 뿐. 현재의 예상 포메이션과 선수 구성은 상대팀들도 모두 미리 읽고 대비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이 사실이다.
최종예선의 앞으로의 일정, 그리고 월드컵 본선을 생각할 때 스리백도 고려해 볼 만하다. 당장 11일 이란과의 경기부터라도 괜찮을 듯하다.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에서 포백만 갖고 경기를 해 본 적은 없다. 스리백이 주를 이루는 사이 포백과 스리백을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좋은 성적을 낸 바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스리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장현수 풀백과 카타르전 풀백 딜레마
포백은 좌우 풀백의 역할이 중요하다. 풀백은 수비와 공격 모두를 잘해야 하고 두 가지를 어떻게 잘 분배해서 소화하느냐가 중요하다. 대표팀 왼쪽 수비수였던 이영표 KBS해설위원(39)은 과거 "풀백은 나가야 할 때와 나가지 말아야 할 때를 잘 판단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풀백이 딜레마에 놓였다. 문제는 상대의 공격수들이 선 형태였다. 카타르는 세 명의 공격수를 정삼각형으로 세웠다. 날개 자원이 없고 최전방 공격수 한 명에 그 뒤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받친다.
좌우 풀백 입장에서는 고민에 빠진다. 직접 충돌할 상대 날개 공격수가 없기 때문. 이제 중앙으로 이동해서 공격형 미드필더들을 압박할 지 아니면 측면 자리를 지킬 지 선택해야 한다. 중앙으로 이동하면 당연히 그가 있던 측면 지역은 빈다. 상대 측면 수비수에게 공략 당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잘 판단해야 상대 공격을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카타르와의 경기에서는 좌우 풀백 장현수(25·광저우 푸리), 홍철(26·수원)이 이 수비가 잘 안됐다.
박경훈 전 감독(55)은 카타르와의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지켜봤다. 그는 "전반전에 풀백이 나서서 좀 공격형 미드필더들을 수비하거나 견제를 해줬으면 했는데 움직임이 아쉬웠다. 이 때문에 혼자 수비형 미드필더로 섰던 정우영(27·충칭 리판)이 혼자서 두 명을 마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장현수 풀백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봤다. 박 전 감독은 "좌우 풀백이 공격 시에는 적극적으로 올라 주는 것이 좋다. (장)현수의 공격적인 움직임이 좀 적었던 것 같다. 풀백 자리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홍철은 그 반대였다. 홍철은 공격에 활발했지만 전진하면 수비 복귀가 늦었다.
▶ 공유되고 있는 한국 공략법, 스리백이 대안?
문제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사실 시리아도 비슷한 방식으로 한국을 어렵게 했다. 한국을 상대하는 중동팀들은 지금 수비 후 역습 형태를 취하면서도 중앙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날개로 측면 돌파를 해서 흔들기보다 최전방 공격수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를 활용해서 공략한다. 한국 포백 수비진들이 이에 대한 대처가 전반적으로 늦기 때문.
카타르는 시리아가 한국을 상대로 0-0으로 비긴 경기를 보고 이러한 공격 방식으로 두 골을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이란, 우즈베키스탄 등도 같은 전술로 한국을 흔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박경훈 전 감독은 "개인적으로는 스리백도 좋은 대처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상대가 중앙 공격을 집중하면 우리도 중앙 수비 숫자를 늘려 대응한다. 스리백을 생각해 봐야 하는 기본적인 이유다.
슈틸리케 감독이 선택해야 할 부분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맡기 전에 과거 몇몇 클럽팀을 전전하며 스리백을 자주 썼다. 대표팀에서도 활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신 그는 전술에 대해 인색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포메이션이나 전술 보다는 팀이 공유하고 있는 철학과 우리 스타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술은 숫자놀음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술을 수정하기보다는 계속 선수 구성으로 분위기를 바꿔 보려 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다.
그래도 스리백은 외면하기 아까운 옵션임에는 틀림 없다. 수비수를 세 명 세우는 것은 네 명 세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수비수 포진에 따라 전체 선수들의 자리가 달라진다. 스리백을 활용하면 현재 풀백이 계속해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 스리백 때는 좌우에 꼭 측면 수비수를 세우지 않고 미드필더나 공격수를 기용해 볼 수도 있다.
이란과의 원정 경기에서 한국은 승점이 급하다. 당장은 상황이 긴박해 큰 변화를 주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리백은 나중에라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