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골프장 예약률 하락, 등산 눈길 돌리는 대기업 임원들…기업 내부 등산 모임도 활성화 움직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임원들은 주말마다 아침 일찍 골프 일정을 챙기는 게 일이었는데, 앞으로 배우자 눈치볼 일만 남았네요."
A기업 관계자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을 맞아 상사들이 주말마다 겪게 될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주말에 일찍 집을 나서던 임원이 종일 집에 있다면 식사 준비와 간식 준비 등 배우자 일거리만 늘리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대기업 임원들은 주말에 더 바쁘다. 취미 때문에 골프장에 가는 이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업무의 일환'으로 골프장을 찾는다. 평소 알고 지내던 관계자들과 골프장에 가서 운동도 하고,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곁들이며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기 위함이다.
금요일 저녁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토요일 새벽이 되면 골프장으로 달려가는 이유다. 다른 약속은 몰라도 골프 약속은 어기게 되면 '왕따'를 넘어 더한 응징(?)이 뒤따르니 칼 같이 약속을 지킨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주요 골프장의 주말 예약률이 뚝 떨어졌다. 예약 미달 사태를 경험한 골프장도 하나둘이 아니다. 일반인들은 큰 관계가 없겠지만, '비즈니스' 차원에서 골프를 하는 이들은 김영란법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른바 '란파라치'로 불리는 파파라치들은 김영란법 시행 첫 주말 주요 골프장을 찾아 '먹잇감'을 노릴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런 것을 뻔히 알면서 평소처럼 골프 약속을 잡는 이들은 거의 없다.
골프장에서 만나 "나이스 샷!" "나이스 버디!" "낫 배드" 등 추임새를 주고받는 모습도 쉽게 보기 어렵게 됐다.
골프장이 김영란법 직격탄을 맞았다면, 주요 산은 앞으로 '새로운 등산객'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영란법 시행 전주 주말에도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 등 서울 시내 근교의 산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청명한 가을 날씨를 즐기러 나온 이들도 있었지만, 김영란법 예행연습을 위해 골프장 대신 산을 찾는 이들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족 단위 등산객도 많았고, 평소보다 50~60대 중장년들이 더 많았다.
주요 기업들도 골프를 지양하고 등산에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B기업은 해마다 진행했던 행사를 올해는 산에서 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음식점이나 행사장을 빌려서 행사를 하면 아무래도 돈이 들 수밖에 없고, 김영란법 위반 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산에 다녀온 뒤 가볍게 식사를 하는 정도로 예년 행사를 대체하겠다는 얘기다.
회사 내부의 등산모임도 더욱 활성화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C기업 관계자는 "회사 내부의 등산 모임을 결성하려는 움직임도 있고,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면서 "주말에 집에만 있기 보다는 산에 가서 맑은 공기도 쐬고 땀을 흘리면 건강에도 좋으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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