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비주력 계열사 정리, 과감한 인수합병(M&A) 등으로 이어져 온 삼성 사업재편은 이제 9부능선을 넘었다. 남은 과제는 계열사들을 수직계열화하는 작업이다.
앞으로 남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국회에서 통과될 각종 법안에 달렸다. 19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던 만큼, 삼성은 법안 통과 여부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사전작업을 진행 중이다. 삼성생명이 금융계열사인 삼성증권의 지분을 매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재계는 다시 삼성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결국 ▲삼성전자 지분 안정적 확보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일가 지배력 강화 ▲수직계열화를 통한 투명성 확보 등의 키워드로 압축된다. 삼성그룹의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범위 내에서 투명성도 최대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투명성을 위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고, 비금융계열사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을 분할해 일반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이 시나리오 성사 여부는 결국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언제, 어떻게 통과되는지에 달렸다. 법안 실효 여부가 중요한 만큼, 삼성은 관련 법안의 진행 여부를 봐 가면서 최대한 탄력성 있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지주회사 설립 절차 착착 진행중= 가장 먼저 나오는 시나리오는 금융지주회사 설립이다. 갈수록 대기업의 금융산업 규제에 대한 여론이 바뀌고 있는 만큼, 삼성은 최근 들어 비용이 들더라도 금융지주회사 설립은 필요하다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금융지주회사법 제43조의 2에 의거해 상장된 금융 자회사의 지분 30% 이상, 비상장 금융 자회사의 지분 50% 이상을 의무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삼성생명은 15.9%의 삼성화재 지분을 보유한 것을 비롯해 삼성증권 11.2%(취득 전 지분율 기준), 삼성카드 71.9%, 삼성자산운용 98.7% 등 금융 계열사들의 지분을 두루 보유하고 있다. 이중 비상장법인인 삼성자산운용을 빼면 모두 상장된 금융 계열사들이다. 삼성생명이 삼성화재로부터 삼성증권 지분을 취득한 후 10.94%의 자사주까지도 추가로 매입할 경우 지분율은 30%를 넘기게 된다. 더불어 삼성화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15.98%까지 삼성생명이 인수하면 삼성생명은 금융지주회사로서의 요건을 갖출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 설립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닌 상황이다.
◆금융지주회사 설립시 지분정리는 필수적= 다만 금융지주회사 설립시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요소가 있다. 바로 비금융회사 지분 처리 문제다. 금융지주사 설립시 삼성생명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정리하고 1대 주주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7.43%이며, 삼성전자의 2대 주주는 4.18%를 보유한 삼성물산이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4.18%보다는 낮은 비율의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지분 처분이 필수적이다. 만약 이 과정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계열사 지분을 총자산의 3% 넘게 보유할 수 없게 돼 삼성전자 지분은 3% 이상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도 과제다. 현재 삼성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물산'의 순환출자 고리가 남아 있다. 이 고리를 끊으려면 삼성화재가 삼성물산 지분 1.3%를 처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의 자사주를 취득하려 한다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는다. 공정거래법상 특정 대기업 계열사가 타 계열사의 자사주를 취득하면서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강화하는 것이 금지돼 있어서다.
◆금융지주사설립 다음단계는 삼성전자지주 설립=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해소하면서도 대전제인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를 지속하려면 결국 삼성전자 지주사 설립설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금융지주회사가 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하면서도 지배력은 유지하려면, 결국 계열사가 삼성전자 지분을 받아줘야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커 지분율을 확대하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만약 삼성전자가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이 되면, 투자부문의 가치는 상당부분 줄어들 수 있어 충분히 삼성생명의 지분을 삼성물산 등이 받아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삼성SDS도 어떤 식으로든 활용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삼성SDS는 현재 물류부문과 IT서비스부문의 분할을 추진 중이다. 업계에서는 삼성SDS가 분할 후 1대주주인 삼성전자와 2대주주인 삼성물산이 지분을 스왑, 삼성전자는 SDS의 IT서비스부문 지배력을 높이고 삼성물산은 물류BPO부문의 지배력을 높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각 사업부문의 시가총액을 높이면 결국 지분을 많이 보유한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도 확대된다.
◆중간금융지주회사법 통과 문제도= 이 모든 과정의 마무리는 삼성그룹이 가장 신경쓰고 있는 중간금융지주회사법 통과와 맞물린다.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회사,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일반지주회사가 수평적으로 연결돼 그룹 전체를 하나의 지주회사 체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될 경우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19.34%)을 그대로 보유한 상황에서 금융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다. 만약 통과되지 않는다면 삼성 측은 금융계열사들과 비금융계열사들로 병렬 형식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다. 삼성물산과 삼성생명과의 고리를 끊고, 삼성물산-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일반지주회사 하나와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지주회사 하나로 사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 이런 경우 지분 해소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삼성 측은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했다가, 어쩔 수 없이 사업을 나눠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국회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 것.
중간금융지주회사 법안이 통과되면 궁극적으로는 삼성물산과 삼성전자투자부문을 합병, 삼성물산이 금융지주회사는 물론이고 삼성전자사업회사 등 대부분의 회사 지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결국 업계에서는 1단계는 금융지주회사 설립, 2단계는 비금융회사를 중심으로 한 일반지주회사 설립, 최종 단계는 중간금융지주회사 법안 통과로 인한 그룹 전체 지주회사화를 시나리오로 세우고 있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LG전자 역시 1999년 이후 3년에 걸쳐 전자와 화학 부문을 과도기적인 지주회사로 만들고, 두 지주회사를 하나로 묶어 최종 지주회사로 전환했다"며 "법안 통과가 남아있긴 하지만 삼성 역시 최종적으로는 LG와 비슷한 흐름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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