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8월 열대야 19일. 평균기온 29.7도로 사상 최고 기록 갱신. 오존주의보 209회로 역대 최다. 온열질환 치료자 1878명. 농가 피해 130억원. 에어컨 판매 220만대. 사상 최악이라는 폭염이 19일 현재까지 우리에게 남긴 숫자들이다.
지독했던 더위가 물러날 기세를 보이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다음 주부터 섭씨 35도 이상까지 올라가 '폭염'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전망이다. 열대야도 기세를 잃어가고 있다. 벌써부터 '새벽 공기가 달라졌다'는 이들도 많다.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로 꼽힌 올해의 무더위는 각종 기상 기록을 양산해 냈다.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이 급증하고 각종 사건ㆍ사고도 늘어나는가 하면 경제 각 분야에서 명암이 엇갈리는 등 사회ㆍ경제적 파급 효과도 컸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말부터 밀어닥친 무더위는 연일 기상청의 역대 기상 관측 기록을 갱신했다. 18일 현재 서울에서 하루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은 '폭염' 발생일이 무려 16일간 지속됐다. 1943년의 25일, 1939년의 23일에 이어 역대 3위의 기록이다. 열대야 일수(최저기온 25도 이상)는 역대 1위 기록을 깰 전망이다. 기상청은 21일까지 열대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는 데, 이 경우 8월 열대야 일수가 19일이나 돼 기존 2013년 18일, 1994년 15일을 뛰어넘는다. 특히 8월 평균 기온은 29.7도로 기상 관측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전체 폭염 발생일이 20일이 넘을 것으로 보여 1994년 29일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할 전망이다. 오존주의보도 209회나 발령돼 1995년 관측 이래 역대 최다였다.
이같은 폭염은 사회ㆍ경제적으로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먼저 땡볕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노인ㆍ어린이 등 취약계층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더위에 열사병ㆍ탈진ㆍ실신 등 온열질환자가 급증해 사망자 숫자만 5월23일부터 지난 17일까지 15명이다. 2011년 집계 시작 이후 가장 많았던 2012년과 동률을 기록했다. 치료를 받은 숫자도 1878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지난해(1056명)의 1.8배, 2014년(556명)의 3.4배다.
경제적인 효과도 만만치 않다. 기후에 가장 민감한 농수축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높은 기온으로 올해 들어 18일까지 84만5700마리의 어폐류, 닭(339만6000마리), 오리(11만6300마리), 돼지(6300마리) 등 354만9000마리의 가축 등이 폐사해 130억원대의 피해가 발생했다. 과일ㆍ채소들도 피해가 심각해 추석을 앞두고 가격이 들썩이고 있는 상황이다.
더위에 필수인 에어컨 가동이 급증하면서 가정용 전기세의 누진제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력 낭비를 부추겨 블랙아웃을 초래한다며 반대하던 정부가 결국 7~9월간 한시적으로 구간 제한을 완화하기로 해 가구당 2~3만원(5단계 기준)을 줄여주기로 했지만, 훨씬 더 싼 기업용 전기요금과의 형평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산업 별로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에어컨 제조업체들은 특수로 에어컨 생산라인 가동 기간을 지난해 보다 늘렸다. 올 에어컨 판매량은 22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역대 최대였던 2013년 200만대 기록을 깰 것으로 보인다. 제빙업계 온라인 쇼핑몰, 워터파크, 선글라스 등 더위 용품 업계, 영화관, 호텔, 편의점, 대형마트 등도 특수를 누렸다. 반면 전통시장 등은 타격을 입었다.
올해의 폭염처럼 이상 기상 현상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앞으로 더욱 더 잦아지고 강도도 더 세질 전망이다. 현재와 같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속될 경우 앞으로 80년 후 지구의 평균 온도는 지금보다 3.7도 올라가고, 해수면은 63cm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경우 지구는 어떻게 될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는 지구의 기온이 2.9도 높아지면 전체 생물의 35%가 멸종위기에 놓인다고 분석했다. 온다가 3도만 상승하더라도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심각한 생존 위기를 겪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미 '대구 사과'는 더 이상 지역의 명물이 아닌 지 오래다. 기온 상승으로 각종 작물의 재배 남방 한계선이 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들도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활엽수들이 산마다 들어차고 있다.
커다란 흔적을 남기고 물러날 기세를 보이고 있는 올해 무더위는 이처럼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탄소 배출량 감축과 신재생에너지 산업 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한편 시민들 각자도 소비 자제ㆍ환경 보호ㆍ검약의 삶 등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계기가 될 전망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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