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경복궁역 등 지하승강장 29곳 역사 리모델링 이유로 에어컨 안켜
-지상 승강장 177곳은 불가마, 손부채질도 소용 없어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기하영 기자, 문제원 기자] "더우니까 말 걸지 마세요."
지난 18일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짜증부터 냈다. 지하철 내 냉방이 워낙 약해 실내 온도가 외부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일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부 지하철역 승강장들이 '사우나'를 방불케해 이용객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외부에 위치한 지상 승강장들도 강한 햇볕에 37도까지 올라가지만 차광막이나 선풍기 등이 전혀 없다.
이날 기자가 찾은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사 내부에는 뜨거운 공기로 가득차 있었다. 전동차 안의 온도는 28.5도로 다소 시원했지만 승강장의 기온은 34.4도까지 치솟았다. 찜질방 불가마를 끌어안은 느낌이었다. 내부에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는 충무로역처럼 역사 리모델링 등으로 관리 중인 역 120개 중 29개에서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있는 시민들은 더위를 참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이마엔 금세 땀방울이 맺혔다. 승객 이민수(25)씨는 "지하철역까지 내려오면서 땀을 너무 많이 흘렸다"며 "빨리 지하철이 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지상에 건설됐다가 민자역사에 덮힌 '동굴형' 지상 승강장의 경우 더 심각하다. 환기도 제대로 안 된 데다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온도가 37도까지 올라가 찜질방을 방불케하는 곳들이 수두룩하다. 용산역, 영등포역, 신도림역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날 오후 영등포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승객들은 높은 온도에 숨막혀하는 표정이었다. 70대 전모씨는 "지하철을 타려고 5분을 기다렸는데 50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젊은이들도 스마트폰용 휴대용 미니 선풍기로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신도림역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날 수원행 열차를 기다리던 황모(55·여)씨는 "2호선에서 내려 1호선까지 오는데 진짜 덥다"며 "사람도 많고 그래서 그런지 서울에서 여기가 제일 더운 것 같다"고 말했다. 신도림역을 포함해 대부분 1호선은 지상에 승강장이 있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236개 지하철역 중 177개가 지상에 있다. 일부 승객들은 지상 승강장에 있는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구매하거나 일회용 컵에 담긴 얼음만 사서 더위를 식혔다.
지상에 설치돼 있어 햇빛과 열기에 그대로 노출된 승강장들도 비슷하다. 1호선 광운대역 지상 승강장의 경우 지상이 뻥 뚫렸지만 강한 햇볕에 차광막도 없어 찜통을 연상케 했다. 승객들은 전동차가 지나가며 내뿜는 열기에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른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특히 이 역은 지하철역이 오래 돼 에스컬레이터가 아예 없고 차광막도 제대로 설치 돼 있지 않았다. 두꺼운 가방을 등에 매고 승강장까지 계단 올라온 김모(50)씨는 "땀이 많이 난다"며 "햇빛이 쨍쨍할 땐 서있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지하에 승강장이 있지만 환승하는 구간이 긴 곳을 통과하는 것도 고역이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종로3가역, 시청역 등이 대표적이다. 환승통로에는 에어컨이 가동되긴 하지만 승강장보다 훨씬 약해 지나가는 승객들의 얼굴에 땀이 가득했다. 강북구에 사는 이상훈(44)씨는 "광화문역 근처에 있는 직장까지 오기 위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환승을 하는데 회사에 오기 전 이미 땀범벅이 된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기하영 기자 hykii@asiae.co.kr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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