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방명록에 '대한민국' '국민' '가치' 언급
"33년간 지켜본 한국정치는 수준 이하"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인사(人事) 서두르지 않겠다"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33년간 지켜본 한국정치의 모습은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숨길 건 숨기고 지킬 건 지키는 그런 식의 개혁이라면, 아예 하지 않겠습니다."
10일 오전 8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검은색 정장차림의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를 중심으로 좌우에 정진석 원내대표, 김광림 정책위의장과 박명재 사무총장이 섰다. 그 뒤에는 전날 새롭게 선출된 최고위원 5명이 자리했다.
현충탑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뗀 일행은 탑 앞에서 묵념했다. 비장감이 배어났다. 현충탑에 분향한 이 대표는 방명록에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 가치를 지키겠습니다'라고 썼다. '국민 퍼스트(First)'라는 평소 구호 그대로였다. 그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당선 이후 지금까지 (속내를) 방명록에 다 썼다"고 했다.
8ㆍ9전당대회에서 새누리당 권력의 정점에 오른 이 대표(전남 순천)는 이날 국립현충원 참배로 첫 공식일정에 나섰다. 이어 오전 9시에는 여의도 당사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했다. 이후에는 야당을 돌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등과 인사하는 '광폭행보'를 드러냈다.
'광복 이후 호남출신 첫 보수정당 대표'라는 새로운 수식어도 붙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그는 "유능하고 따뜻한 혁신 보수정당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당원과 국민들은 무려 41%의 표를 몰아줬다.
현충원 참배에서 그는 공약인 정치개혁특위를 재차 강조했다. "국회의원의 '셀프개혁'은 안 된다"면서 "국민을 모시고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 최고위원회의 자리에선 '섬기는 리더십'을 거론했다. "앞으로 국민을 찾아 현장을 가야지, 오게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또 "(후속) 인사는 서두르지 않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정된 마음을 갖고 천천히 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 홍보ㆍ정무수석을 지낸 그는 전형적 친박(친박근혜)이다. "근본도 없는 놈을 (요직에서) 중용했다"며 전당대회 연단에선 느닷없이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독박(獨朴)'이란 대목이 눈에 띈다. '독자적 친박'이란 뜻의 이 표현은 인간 이정현의 색깔을 가장 담백하게 드러낸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어떨 때는 색깔을 과감히 달리하기도 한다. 나름대로 친박이란 울타리의 한계를 벗어나려 노력해 왔다"고 평가했다.
그의 말마따나 전남 곡성이 고향인 '촌놈' 이 대표는 민정당 국회의원 비서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2014년 7ㆍ30재보궐선거에선 정계 입문 23년 만에 야권 텃밭인 호남에서 처음으로 선출직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어 지난 4ㆍ13총선에선 호남에 다시 새누리당의 깃발을 꽂았다.
박 대통령과는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 달라"는 읍소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선 공보특보로 1년 넘게 함께 전국을 돌았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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