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현·정동훈, '혀'로 취재하다 - 그 별미를 결정하는 건 내장…'아르기닌'이 정력 비밀
전복은 '패류의 황제'다. 조개류 중에서 맛과 영양이 최고로 꼽혀 황제라 불렸겠지만 왠지 전복의 효능을 얘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진시황도 이 별칭이 생기는 데 한몫을 했을 것만 같다. 불로장생을 꿈꾸던 그가 꼭 챙겨 먹었다는 영약이 제주도산 전복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진시황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전복은 여름철 무더위에 소화력이 떨어지고 기력이 약해진 이들에게 좋은 보양식이었다.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풍부하다. 또 비타민, 칼슘, 타우린 등의 함유량이 높고 정력에 좋다는 아르기닌도 들어있다. 전복 내장에는 암 치유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후코이단 성분이 함유돼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도 전복 껍데기를 '석결명'이라고 부르며 눈에 좋다고 했다.
◆전복, 지금이 제철인 보양식 = 특히나 전복은 8~10월에 가장 맛이 좋다. 5~6월 산란기에 살이 오르지만 알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품고 있다. 겨울에는 살이 마른다. 이맘때가 가장 먹기 좋은 보양식인 셈이다.
우리가 전복을 먹어 온 역사는 깊다. 화석 등을 토대로 볼 때 지금과 같은 전복이 출현한 것은 1억년 전이라고 하니 인류가 등장할 때 이미 전복은 먹을 만 했을 것이다. 가까운 과거의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 전복에 대한 설명과 먹는 방법 등이 나온다.
하지만 전복은 비쌌다. 패류의 황제라는 데는 맛과 영양뿐만 아니라 쉬 접할 수 없는 귀한 재료라는 의미도 반영돼 있었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가 쓴 '식탁위의 한국사'를 보면 1930년대 전복은 제주도 잠녀가 채취하는 어물 중에서 값이 제일 비쌌다고 한다.
전복은 2000년대 들어 대량 양식으로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면서 서민들도 즐겨 먹을 수 있게 됐다. 전복 생산량은 2007년에는 4498톤이었지만 2015년 기준 1만494톤까지 치솟았다. 양식 전복은 전라남도 완도에서 80% 이상 생산된다. 이곳의 바닷물 온도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28도 이상 오르지 않는다. 전복의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도 풍부하다. 전복을 키우기에 안성맞춤인 조건이다.
최근 전복 양식은 크게 해상과 육상 양식으로 나뉜다고 한다. 완도 일대에 해상 양식장이 밀집해 있어 바다가 오염되고 전복 폐사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육지의 건물 안에서 전복을 키우는 양식법이 개발됐는데 바다에서 키우는 것과 생김새나 맛, 가치가 다르다. 바다 양식으로 키운 전복은 껍질이 파랗고 자연산 못지않게 살이 부드럽다. 반면 육상 양식은 햇빛을 많이 받지 못해 껍질이 하얗고 맛도 덜하다.
◆전복죽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내장 = 전복은 싱싱할 때 회로 먹어야 제맛이겠지만 죽으로도 많이 먹는다. 양식이 본격화되기 전 작은 양으로 여러 사람이 맛을 보기 위한 조리방법으로 전복죽이 발전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복죽은 더위에 지친 몸을 보하는 영양은 충분하지만 기름지고 갖은 양념을 쓰는 다른 보양식에 비해 칼로리와 나트륨 함량이 적다. 28일 이런 전복죽을 맛보기 위해 1968년부터 죽을 쒔다는 서울 충무로의 한 죽 전문점을 찾았다.
전복죽은 전복 살만 저며 넣고 만든 죽과 제주도에서 '게웃'이라고 하는 내장이 들어간 죽으로 나뉠 수 있다. 살만 넣으면 여느 쌀죽처럼 희지만 내장이 들어가면 옅은 녹색을 띈다. 맛의 차이는 크다. 한 그릇씩 시켜 두 명이서 나눠먹기로 했다.
흰 전복죽은 담백했다. 간간이 씹히는 전복 살의 식감은 쫄깃했다. 죽이라 금세 소화돼 속이 허할까 우려했지만 입안에 감기는 맛은 든든했다. 내장이 들어간 죽은 푸르스름한 색 때문에 먼저 숟가락이 가지는 않지만 한 번 먹으면 담백한 흰죽의 맛을 잊게 했다. 참기름의 고소함이 아닌 전복 내장 고유의 감칠맛이 입맛을 돋우었다. 내장이 가지고 있는 짭조름함 덕분에 간이 딱 맞아 밑반찬에 손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내장에는 평소 전복이 먹는 해초의 성분이 농축돼 있다고 한다. 언론인 홍승면 선생은 자신의 음식 칼럼 '백미백상'에 "(전복은) 동물성은 먹지 않고 꼭 식물성인 해초만을 먹는다. 전복의 그 우아한 맛은 전복의 식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고 썼다. 우아하다고 표현되는 맛의 실체는 결국 내장이라는 얘기다. 남해 바다의 진한 향을 만끽하며 한참 숟가락질을 하다 보니 내장이 든 전복죽만 바닥을 보였다. 나눠먹지 말고 온전한 한 그릇의 전복내장죽을 먹을 걸 그랬다 싶어, 슬쩍 눈치 보며 서둘러 남은 죽을 덜어 왔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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