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영국이 1990년 마거릿 대처 사임 이후 26년만에 또 다른 여성 총리를 맞이하게 됐다. 바로 테리사 메이 현 내무장관이다.
영국 보수당 대표 및 차기 총리 경선에서 메이와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안드레아 레드섬 에너지 차관이 11일(현지시간) 사퇴하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오는 13일 자신이 물러나고 메이가 새 총리에 취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후임 총리로 확정된 뒤 의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 탈퇴)는 브렉시트"라며 국민투표 결과를 번복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 분명히 밝혔다. 그는 다만 협상 전략을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올해 안에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해 브렉시트 협상 개시를 위한 공식 절차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이 장관은 "국민투표는 EU 탈퇴를 위한 투표였지만, 진지한 변화를 위한 투표이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변화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정부가 몰라보고 그렇게 놀랐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메이 장관은 자신의 당 대표 도전를 두고는 "소수특권층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일하는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더 주도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가 더 나은 영국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그는 이날 오전 중부 도시 버밍엄에서 한 마지막 경선 유세에서도 "내가 이끄는 보수당은 완전히, 전적으로 평범한 노동자들을 위한 당이 될 것"이라며 "보수당은 영국을 모든 사람을 위한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주택을 보급하고 개인과 기업의 탈세를 엄중히 단속하며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노동자와 기업가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데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임원들과 직원들의 보수 격차가 커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임원 보수지급안에 대한 주주들의 표결 결과에 구속력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메이 장관은 이사회의 경영 책임을 묻는 역할을 해야 할 사외이사 자리를 비슷한 사회적 배경을 가지거나 업계 내부에 있는 인사들로 채워 넣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근로자와 소비자를 이사회에 의무적으로 포함시킨다는 계획도 내놨다.
공교롭게도 영국은 유럽연합(EU) 통합 참여 여부를 두고 국론이 극단적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여성을 총리로 맞이하는 역사를 반복하게 됐다. 대처는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경제공동체(EEC·EU의 전신) 잔류를 선택했던 1979년 말 취임했다.
대처가 처음 취임했던 당시보다 메이의 어깨는 더 무겁다고 볼 수 있다. 유럽 통합에 참여했던 지난 40여년의 역사를 되돌리는 결정을 했기에 지금 영국 정치는 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의 위기 상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메이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과정에서 분열된 국론을 통합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도 브렉시트 찬반으로 갈라진 단독 과반 정당 보수당을 통합해야 한다.
정작 메이 본인도 내적 갈등이 심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보수당 내에서 EU 잔류를 주장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최대 야당인 노동당은 메이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 이미 메이 흔들기에 나섰다. EU 잔류를 주장했던 메이가 향후 브렉시트 정국을 이끌기에는 부적합하다며 조기총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안팎으로 적들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이때문에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메이가 차기 내각을 구성하면서 무엇보다 안정을 중시할 것이라며 경험 많고 특히 탈퇴와 잔류 진영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인사들을 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장 중요한 요직인 재무장관에는 필립 해몬드 영국 외무장관이 거론되고 있다. 해몬드 장관은 메이처럼 영국의 EU 잔류를 주장했다. 탈퇴파도 끌어안기 위해 레드섬의 기업혁신부장관 기용도 예상됐다. 캐머런 총리와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을 연이어 배신해 실망을 줬던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은 외무장관에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
메이 차기 총리의 향후 정국 구상은 오는 20일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하원의 주간 '총리질의응답(PMQs)' 의사 일정이 예정돼 있다.
21일부터는 하원의 여름 휴회가 시작된다. 한달 넘게 휴회한 후 9월5일 다시 개원하게 되는데 의회 휴회 기간 동안 메이 총리는 정국 구상과 브렉시트 대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메이 총리의 EU 정상회의 데뷔는 10월20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월2일부터는 나흘 일정으로 보수당 연례 당원대회가 진행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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