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강남역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30대 피의자가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김후균)는 강남역 살인 사건 피의자 김모(33)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검찰은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명령과 치료감호 처분도 법원에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5월 17일 새벽 1시께 강남역 인근 주점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생면부지의 피해자 A(22·여)씨를 주방 식칼로 십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중·고교 시절부터 정신 불안을 겪어온 김씨는 2009년 8월 조현병(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검찰이 한 달 가까이 국립법무병원(옛 공주치료감호소)에 김씨를 유치하고 정신감정한 결과 그는 환청, 피해망상 등에 시달리는 조현병 환자로 나타났다.
이전부터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해 오던 김씨는 올해 초 병원을 나온 뒤 약물치료를 중단하고, 3월부터는 아예 집을 나와 강남 일대 빌딩 계단이나 화장실을 전전하며 먹고 자는 불안한 생활을 해 증상이 악화됐다고 한다.
그는 작년 8월 2층 건물에 살면서 ‘4층 여자 발소리가 들린다’며 이웃과 시비를 벌이다 신고당하는가 하면, ‘길에서 여자들이 앞을 가로막아 지각했다’, ‘지하철에서 여자들이 일부러 어깨를 치고 갔다’ 같은 피해망상으로 여성에 대한 막연한 반감·불만을 품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그가 범행 이틀 전 살인을 결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터 인근 공터에서 담배를 피우다 젊은 여성이 자신의 신발에 담배꽁초를 던진 일을 겪은 뒤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끝에 결국 아무 여성이나 죽여 이를 풀자고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범행 장소로 점찍은 곳은 자신이 일했던 주점 건물의 남녀공용화장실. 범행 하루 전인 이튿날 오후 직장을 조퇴하며 주방에서 식칼까지 챙겨 나온 김씨는 범행대상을 물색했고, 날짜를 넘긴 깊은 밤 처음으로 홀로 화장실을 찾은 A씨가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검찰은 다만 사건이 알려지며 논란이 된 일명 증오범죄, 혐오범죄와는 거리가 있다고 잠정 판단했다. 증오범죄가 법률상 정립된 개념은 아니지만 대개 인종이나 성별 등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심에서 비롯된 범죄로 통용되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피해망상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반감·공격성을 보이기는 하나, 여성에 대한 비하·차별과 같은 일반적 신념에 따른 혐오 경향은 뚜렷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는 잔혹범행으로 여성 및 사회적 약자의 안전에 관한 국민적 공포·불안을 확산시켰다”면서 “수사과정에서도 반성이나 죄의식이 결여된 모습을 보여 엄중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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