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국민화가 호안 미로 특별전
[아시아경제]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주인공은 왜 한낮에 미쓰코시 백화점의 옥상에 올라갔을까. 물건을 사거나 경성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다. 그는 '소외된 근대의 지식인'으로서 나약하고 무능하다. 기둥서방 노릇도 그에게는 사치다. 그런 그가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겨드랑이에 가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되뇐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높은 데 올라가서 날아보겠다는 생각은 아이들이나 한다. 시내의 빌딩이 아무리 치솟아도 인체의 강도에는 한계가 있다. 4층 높이에서만 떨어져도 즉사한다. 독자는 날개의 주인공에게서 미숙을 발견한다. 이 미숙은 덜떨어짐과는 다르다. 동심을 향한 갈망, 절박한 포기와 선택적 퇴행이 작동한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1930년 10월 24일 일본의 미쓰코시 경성점으로 문을 연다. 영화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이 안경을 맞춘 곳, 그의 쌍둥이 동생 미츠코가 동경에서 날아온 명품을 쇼핑한 곳, 영화 후반부에는 결혼식이 열리고 하객들로 붐비는 가운데 총격전을 벌이는 곳. 지금은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다.
오늘날 백화점 옥상에는 '트리니티 가든'이라는 정원이 조성되었다. 정원에는 모양이 동글동글하고 매끄러워 귀여운 느낌을 주는 조각품이 있다. 검은 색인데다 사뭇 거대한데도 위압감을 주지는 않는다. 어린 아이나 동물을 연상시키는 이 조각은 호안 미로가 만든 '인물(Personnage)'이다.
미로는 이 작품을 1974년에 제작했다. 그의 나이 여든한 살, 세상을 떠나기 9년 전이다. 미술학자들은 이 무렵 미로의 작품이 초기의 형태들을 단순화해 대상의 본질만 남겼다고 본다. 미로는 자신의 작품에 나타나는 형태에 대해 말했다. "나에게 형태는 추상적이지 않다. 형태란 언제나 사람, 새와 같은 것들이다."
백화점 옥상을 장식한 그의 '인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나 아기공룡 둘리를 생각할 수도 있다. 형태 뿐 아니라 재료의 질감과 색채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이다. '인물'은 예술적 상상의 산물임에 틀림없지만 미로의 의식 속에 선명한 특정한 누군가일 것이다.
![[허진석의 문화 프리즘]미로를 만나 상상의 迷路에 빠지다](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6061013554002872_3.jpg)
미로는 파블로 피카소나 살바도르 달리처럼 미켈란젤로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다. 그의 예술적 지평은 회화ㆍ판화ㆍ조각ㆍ도예로 확대되어 나갔다. 우리가 보는 것은 미로의 바닷가에 흩어진 소라나 조가비 부스러기다. 미로는 장 콕도의 노래 속에 들어가 스스로 소라 껍데기가 된다.
여름날 바다에 나가 소라 껍데기 하나를 바람 속에 던져 보라. 그때마다 다른 휘파람 소리를 들을 것이다. 소라라는 구체적 사물로부터 추상의 악보를 얻어 무한대의 음표를 새겨 넣을 수 있다. 미로의 예술을 느끼는 과정은 손에 잡히는 현실에서 출발해 상상과 환상, 추상의 세계로 접어드는 길이다.
'카탈루냐 풍경(사냥꾼)'<그림1>은 미로가 1923년에서 1924년 사이에 그린 그림이다. 언뜻 봐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미로는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연필 스케치<그림2>를 했다. 이 스케치가 그림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카탈루냐 풍경'은 뉴욕(현대미술관)에, 스케치는 바르셀로나(호안 미로 재단)에 있다.
미로는 사냥꾼을 '카탈루냐 풍경'의 왼쪽에 그렸다. 토끼를 잡아 점심으로 구워 먹을 참이다. 파이프가 대번에 눈에 들어온다. 그의 눈과 귀, 콧수염, 턱수염, 심장, 거꾸로 매달린 토끼도 보인다. 한낮의 태양이 이글거린다.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의 '소혹성 B612'를 연상시키는 천체도 보인다.
그림의 위와 아래 배경은 두 가지 색으로 분할되었다. 하늘과 땅이다. 오른쪽에 모닥불이 보인다. 토끼는 잠든 듯한 모습으로 그렸다. 사냥꾼은 두 다리로 완고하게 버티고 섰다. 그러나 두 팔은 리드미컬하게 굽이친다. 오른쪽 아래 정어리를 뜻하는 'sardine'의 첫 네 글자가 보인다. 정어리도 먹으려나 보다.
![[허진석의 문화 프리즘]미로를 만나 상상의 迷路에 빠지다](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6061013554002872_2.jpg)
미로는 대중과 자신의 작품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그는 1959년 뉴욕 현대미술관을 찾아가 '카탈루냐 풍경'에 등장하는 사물에 대해 설명한다. 이 내용을 잘 설명한 책이 '호안 미로(RHK)'다. 책을 먼저 읽고 오는 26일에 시작해 9월 2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는 미로의 특별전을 즐기면 좋겠다.
미로의 전시는 이 예술가의 풍요롭지만 심연과도 같은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 예술로 점철한 90년에 이르는 긴 생애는 미로(迷路)와 같다. 무심코 발을 들여 놓았다가는 길을 잃는다. 하지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의 입장권을 받는 순간 우리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손에 넣는다.
미로는 바르셀로나 사람이다. 고향에 있는 프란시스코 갈리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커서 사업가가 되려 했지만 심한 신경쇠약이 인생의 길을 바꾸게 만들었다. 미로의 부모는 아들을 화가로 키우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을 어찌하겠는가. 미로는 야수파와 입체파,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에서는 밝은 색채와 추상적인 형태가 어우러진다. 소박하고 원시적인 분위기 속에 정교한 예술적 고려가 잠복했다. 1920년대를 프랑스 파리에서 보내며 피카소와 친분을 쌓고 초현실주의 운동에도 참여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1940년에 스페인으로 돌아간다. 1956년에는 마요르카 섬에 있는 팔마로 이주해 죽을 때까지 살았다.
마요르카에 있는 미로의 작업실은 작은 왕국으로서 그가 작품을 창작하는 데 완벽한 배경이 되었다. 미로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근면하게 가꾸어낸 풍요로운 정원이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예술가로서 그의 마지막 시기(1956~1981년)를 장식했다.
'카탈루냐 풍경'의 오른쪽 귀퉁이에는 스페인의 국기가 나부낀다. 미로의 세계에는 늘 스페인, 카탈루냐,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가 있었다. 미로에게 헌정된 미술관도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에 있다. 위대한 예술가들이라면 대개 그렇듯이, 미로 역시 사랑으로 충만한 예술가였다. 그는 말했다.
"그림이나 시는 사랑, 즉 완전한 포용을 경험할 때 만들어진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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