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어."
박성현(23)이 우승한 지난주 두산매치플레이 이야기입니다. 국내 유일의 매치플레이라 매년 '각본없는 드라마'가 연출되는 무대입니다. 올해는 대진표부터 기가 막혔습니다. 상위 시드 32명이 자신의 상대를 직접 선택하는 방식인데요. 김지현2(25ㆍ롯데)가 64강전 상대로 저를 뽑았습니다. 승리를 거뒀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는 후배를 이겨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32강전에서 또 다른 김지현(25ㆍ한화)을 만났습니다. 1, 2라운드 모두 김지현과 격돌한 셈입니다. 지현이는 특히 투어에서 가장 아끼는 동생인데요, 올해는 한화골프단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이입니다. 서로 매치 상대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경기 전에는 점점 말까지 없어지더라고요. 전반에는 제가 3홀 차로 앞서 나가기도 했는데요. 마지막 18번홀(파5)을 내주면서 1홀 차로 졌습니다.
지현이가 안절부절하는 것을 보니 패자보다는 승자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언니를 이겼으니 무조건 결승까지 가야 한다"고요. "만약 결승에 진출하면 춘천에 다시 와서 응원하겠다"는 '공약'을 곁들였습니다. 저를 이긴 미안함 때문이었을까요. 지현이는 16강전에서 이효린(19ㆍ미래에셋), 8강전에서 김지영(20), 4강전에서 장수연(22)을 차례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라데나골프장을 다시 찾아 이번에는 선수가 아닌 갤러리로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지현이는 막강한 박성현을 상대로 2홀 차 리드까지 잡을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막판 운이 따르지 않아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눈물을 펑펑 쏟은 지현이와 강촌에서 1박을 했는데요. "지금의 아픔이 좋은 경험으로 남아 조만간 우승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습니다. "지현아, 언니가 항상 니 뒤에서 응원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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