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명재 칼럼]희귀해진 '책임 있는 이들의 책임 있는 발언'

시계아이콘01분 51초 소요

[이명재 칼럼]희귀해진 '책임 있는 이들의 책임 있는 발언' 이명재 논설위원
AD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번 주에 최초의 원자폭탄 피폭지인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사태다. 취임 초기부터 '핵 없는 세계'를 표방한 오바마의 글로벌 비핵화 의지에서 비롯된 방문이며 "(원폭) 피해자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히로시마 방문은 일본을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전환시켜 주는 결과로 일단 받아들여진다. 침략과 전쟁범죄에 대해 분명한 사죄는커녕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에 이번 방문은 일대 '외교적 개가'라고 할 만하다.


일본의 표정에서 승리자가 된 듯한 득의양양이 여실히 느껴진다. 우리로 하여금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초현실적 현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과연 승리자인가. 일본의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가라타니 고진의 유명한 말을 빌리자면 일본의 승리(로 비쳐지는 지금의 상황)는 '자유'와 맞바꾼 것이다. 고진에 따르면 책임은 자유와 관련이 있다. 고진은 "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대해 자신의 자유에 의한 것이었다고 받아들일 때 책임을 질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즉 나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할 때, 그럴 때만이 진정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국의 대표적인 사상가가 말하듯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 '사죄하지 않는 일본', 그래서 '책임을 지지 않는 일본'은 영영 자유를 얻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함으로써 자신의 '부자유'를 보여주는 이들의 말을 연일 듣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책임의 상당 부분이, 설령 책임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일부는 있어 보이는 이들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를 매우 꺼리는 말들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인 사과를 거부하는 정부,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군인들의 발포에 대해 자신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변하는 전직 대통령,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발언을 좀처럼 하지 않으려 하는 최고권력자.


가습기 사건의 담당 부처의 장관은 '수많은 희생자를 낸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업체들의 장삿속과 제품 안전관리 법제 미비가 중첩돼 일어난 사고"라고 말한다. 상혼(商魂) 탓이며 제도 탓이니, 피해자들을 찾아가 봤냐는 질문에도 "내가 왜 만나야 하느냐"고 오히려 힐난하듯 반문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광주사태와 나와는 아무 관계없다"고 버젓이 말했는데, 그의 말을 믿으려면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이 무차별 발포할 때 대통령 이상의 실권자였던 그가 '당시 작전지휘체계에 없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부터 믿어야 한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며 여당의 사실상의 총재인 최고권력자는 무엇보다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이랄 수 있는 이번 총선 결과와 자신은 무관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언젠가부터 보기 힘들어진 것 중의 하나가 '책임 있는 이들의 책임 있는 발언'인 것도 이들의 말과 무관치 않다. 책임 있는 이들의 말들은 책임을 매우 모호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들의 말이 보여주는 것은 말하자면 결과는 있는데 원인이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이들에게서 자신이 그 상황의 중심, 혹은 정점에 있는데도 변방으로, 낮은 곳으로 밀어내려는 안간힘을 본다. 스스로가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건 책임의식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 현실을 보느냐는 인식의 결함의 문제다. 그것은 주변인들을 힘들게 하지만 무엇보다 그 자신들의 불행이다.


일본의 우파적 정치인들은 '정상국가(normal state)'라는 말로 일본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여기서 정상국가는 '스스로 판단해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자위권을 행사할 수도 있는 국가'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아직 '정상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는 않다. 일본이든,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이들이든 '정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책임'도 나올 것이며, 그리하여 '자유'도 얻을 것이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6.01.0914:18
    "손해 보고도 집못팔까" 걱정 덜어준다…지방 미분양 '환매보증' 첫도입
    "손해 보고도 집못팔까" 걱정 덜어준다…지방 미분양 '환매보증' 첫도입

    정부가 지방 미분양 해소를 위해 수분양자에게 일정 가격으로 되팔 권리를 보장하는 '주택환매 보증제(가칭)'를 처음 도입한다. 준공 후 미분양 1가구1주택 특례 가액기준을 6억원에서 7억원으로 상향하고, 인구감소지역 세제 특례와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CR리츠) 지원도 연장한다. 공급 측면에서는 3기 신도시 1만8000가구를 포함해 올해 5만가구 착공에 나선다. 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서

  • 26.01.0914:05
    디지털자산 제도화 본격화…스테이블코인·현물 ETF까지 제도권 편입
    디지털자산 제도화 본격화…스테이블코인·현물 ETF까지 제도권 편입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 마련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제도화에 속도를 낸다. 디지털자산 기본법(가상자산 2단계 법안) 입법을 통해 발행·유통·거래 전반을 포괄하는 규제 틀을 마련한다. 또한 디지털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기관은 9일 오후 '2026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 마련 등 디지털자산을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 26.01.0914:00
    국장 장기투자 촉진 ISA 신설…국부펀드는 20조원 규모로 출범
    국장 장기투자 촉진 ISA 신설…국부펀드는 20조원 규모로 출범

    정부가 국내 장기 주식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대폭 확대한 생산적 금융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출시한다. 투자 시 납입부터 배당까지 '더블 혜택'을 주는 국민성장펀드·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펀드도 출시한다. 국내외 산업과 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수익을 창출하는 '한국형 국부펀드'는 20조원 규모로 출범하기로 했다.9일 재정경제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60

  • 26.01.0914:00
    "국장 장기투자 촉진" 세제혜택 늘린 '생산적금융 ISA' 신설
    "국장 장기투자 촉진" 세제혜택 늘린 '생산적금융 ISA' 신설

    생산적 금융을 강조해온 이재명 정부가 국장 장기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생산적 금융 개인종합투자계좌(ISA)'를 신설한다. 일정소득 이하의 청년을 대상으로 한 '청년형 ISA'는 물론, 비과세 200만원이 적용되는 기존 ISA 대비 세제혜택을 대폭 확대한 '국민성장ISA'도 선보일 예정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9일 오후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공개했다. 생산적 금융 기치 하에 첨단

  • 26.01.0914:00
    7월부터 24시간 외환시장 개방…MSCI선진지수 편입 박차
    7월부터 24시간 외환시장 개방…MSCI선진지수 편입 박차

    정부가 오는 7월부터 외환시장을 24시간 개방해 원화 국제화에 나선다. 역외 원화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규제를 정비함으로써 한국 증시의 숙원이자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 기관은 9일 오후 '2026년 경제성장 전략'을 공개하면서 이러한 내용의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한 외환·자본시장 종합

  • 26.01.1609:11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월 15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전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희석 : 감사합니다. 소종섭 :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제명 처분을 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나요? 윤희석 :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죠

  • 26.01.1416:21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1월 14일) ※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함께 여러 가지 이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지내셨죠? 이준석 : 예, 그렇습니다. 소종

  • 26.01.1008:01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808:49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710:25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1월 5일) 소종섭 : 어서 오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장성철 :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종섭 : 이 얘기부터 해보죠.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서 폭언했다, 보좌진에게 갑질했다, 남편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등 의혹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