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일본화' 우려에도 정부 안팎서 "적극 벤치마킹해야"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한국 경제가 '일본화한다'는 우려가 크지만 최근 조선, 해운 등 주력 업종의 구조조정 국면에선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7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일본항공(JAL)과 제너럴모터스(GM)ㆍ크라이슬러의 구조조정 등 해외 사례를 살펴보며 재정 지원, 살릴 기업과 포기할 기업 선별 방법을 구체화하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 특히 주목 받는 모델은 JAL의 생존기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이자 취업 희망 1순위였던 JAL은 천문학적인 적자로 2010년 1월19일 파산했다. JAL의 부채 규모는 2조3221억엔이었고 자본은 완전잠식 상태였다.
앞서 일본 정부는 JAL의 경영 실적이 악화하자 먼저 경영개선계획 책정을 권고했다. JAL의 영업이익은 2008년(회계연도 기준) -508억엔, 2009년 -1208억엔이었다.
정부 권고를 받아들여 JAL은 2009년 11월 사업재생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부터 신청했다. 사업재생 ADR은 일본 경제산업대신의 인정을 받은 중립적 제3자가 투입돼 채무조정을 실시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순수한 사적정리와 법정관리의 장점을 혼합한 이 제도를 지난 2007년 도입했다. 과잉채무 문제가 있는 기업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지원을 얻는 데는 한계가 있고, 법정관리로 이동할 경우 거래처 기업에 피해가 간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JAL은 ADR을 신청하고 채권을 일시정지한 뒤 채권단 회의를 거쳐 2010년 1월 회사갱생(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다. 이어 일본 기업재생지원기구는 JAL에 3500억엔을 출자했고 채권단은 5215억엔 규모의 채권을 포기했다. 또 기존 주식에 대해 100% 감자를 실시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는 자못 비정하다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성역 없이 '수술'할 수 있는 경영 전문가 수혈에도 공을 들였다. 총리가 직접 머리를 조아리며 모셔온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은 "보수 없이 3년만 일하겠다"고 밝힌 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이뤄냈다.
JAL은 사업 규모 축소를 위해 국제선 40%, 국내선 30%, 기계장비 30%를 줄였다. 기업연금은 현직 직원 50%, 전직 직원 30%를 줄였다. 110곳에 달하던 자회사도 60개사만 남기고 모두 매각했다.
직원을 4만8000명에서 3만2000명으로 줄이는 대규모 감원은 이나모리 회장 취임 전 기업재생지원기구가 결정한 사안이었다. 채권단과 정부는 이보다 더 많은 인원 감축을 요구했으나 이나모리 회장은 부작용 방지를 위해 '더 이상의 해고는 없다'고 선언했다.
결과는 알려진대로다. JAL의 2011년 3월 결산 당시 영업이익은 1866억엔으로 당초 목표액보다 약 1200억엔을 웃돌았다. 2012년 영업이익은 1716억엔, 2013년엔 저비용항공사들의 위협에도 1662억엔을 거둬들였다. 누구도 살아나리라 장담하지 못했던 JAL이 우량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 같은 JAL의 구조조정 과정을 연구한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은 우리와 법체계가 유사하고 JAL, 도사전기철도주식회사ㆍ도사덴드림서비스ㆍ고지현교통주식회사 등 최근 기업 구조조정 사례도 풍부해 참고할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구 선임연구위원은 "더 중요한 것은 정부의 추진력"이라며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가능한 빨리 구조조정을 추진해 기업들의 회생 가능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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