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생존 역부족 자율협약 신청키로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모든 힘을 다해 살리겠다."
지난해 말 양대 국적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설이 불거졌을 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결연했다. "해운업은 국가 전략산업이다" 그러니 독자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간곡한 호소이자 단호한 선언이었다.
2014년 위기를 겪고 있는 한진해운을 제수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으로부터 되사올 때부터 고난의 운명은 시작됐다. '회사가 흑자로 돌아설 때까지 무보수로 일하겠다'며 배수진을 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조 회장이 25일 채권단에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을 신청한다. 독자적으로 진행하던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채권단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경영권 포기'를 각오한 선택이다. 2013년부터 모회사인 대한항공을 통해 1조원의 자금을 지원해왔지만 극심해지는 유동성 위기와 해운업황에 닥친 세계적 불황의 파고는 높았다.
한진해운의 금융권 부채는 5조6000억원(3월말 기준)에 이른다. 이는 지난달 협약에 들어간 현대상선(4조8000억원) 보다 많다. 시장에서는 채권단이 현대상선에 요구한 것 이상의 '조건부 자율협약'을 진행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신청하는 과정에서도 스텝은 꼬였다. 지난 22일 한진해운은 자율협약을 신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채권단과의 사전 협의가 없는 '셀프 구조조정'이었다. 채권단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고, 시장은 조 회장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단서가 되는 일은 전날 발생했다. 최은영 일가가 한진해운 보유 주식 96만7927주(0.39%) 전량을 매각했다는 공시가 떴다. 배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옛 선장이 발을 뺀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조 회장이 섭섭해했고, 결국 독자 생존의 희망을 접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율협약에 돌입하는 과정에서 채권단의 압박은 거세질 것이다. 현대상선 자율협약 돌입 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사재 300억원을 출연한 것에 상응하는 수준의 자구안을 요구할 수 있다. 금융권 부채 외 회사채 만기 연장과 자산매각, 용선료 인하 협상 등의 고강도 자구안도 요구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조 회장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한진해운은 조 회장의 선친인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1977년 수송보국을 이념으로 세운 회사다. 해운의 미래가 컨테이너의 발전과 연결될 것을 직감한 그는 국가의 무역항로를 연다는 사명감으로 바닷길을 개척해갔고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역사를 함께 해왔다.
2002년 조중훈 회장이 별세하고 한진그룹이 넷으로 나뉘면서 한진해운은 3남인 고(故) 조수호 회장이 맡았다.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지병으로 별세하자 그의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해왔지만 지속된 불황과 극심한 유동성 위기로 2014년 손을 뗐다.
조 회장은 선친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14년 한진해운을 인수해 무보수의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역부족이었고, '수송왕국'이라는 그의 꿈도 꺾이고 말았다. 한진그룹은 "유상증자 등을 통해 1조원의 자금을 지원해 왔으나 독자적 자구노력만으로는 경영정상화가 어렵다고 판단해 자율협약을 신청하게 됐다"면서 "채권단 지원을 토대로 한진해운 경영정상화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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