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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노자와 알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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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노자와 알파고 이상국 디지털뉴스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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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맹자, 순자, 손자는 모두 이름이 아니다. 성에 '선생님'이란 의미의 자(子)가 붙었을 뿐이다. 공자는 공구이며, 맹자는 맹가, 순자는 순황, 손자는 손무이다. 감히 이름을 부르기도 어려운, 큰 사람이라서 이렇게 호칭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 하나만으로도 헷갈릴 염려가 없는 공시통시(共時通時)적인 지명도를 지니고 있음을 이렇게 과시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만약 2500년쯤 뒤에 '이선생'으로 우러름을 받는다면, 지금 이분들이 지하에서 느끼는 기분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노자는 이름이 아닐 뿐 아니라, 그 말 속엔 성도 없다. 그냥 '늙은 선생님'이란 의미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 이런 호칭으로 장구한 세월을 지탱해온 캐릭터가 있을 수 있을까.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에는 노자의 성이 이씨이고 이름은 이(耳)였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왜 '이자'로 불리지 않고 '노자'로 불렸을까. 당시 재테크가 유난해서 '인터레스트'와 헷갈릴까봐 안 불렀을 리도 없고, '아니, 이 자가?' 하면서 코리안이 아재개그로 놀렸을 리도 없는데, 왜 이자가 아니라 노자가 됐을까.

이걸 스토리로 풀어낸 자료가 있다. "노자의 어머니가 노자를 회임한 지 81년 만에 자두나무 아래를 거닐다가 왼쪽 옆구리를 가르고 노자를 낳았다." 이 유난한 탄생설화는 인간의 탄생방식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성인들의 태생 지우기'의 한 전형이지만, 81년 동안 뱃속에 있다가 태어났다는 얘기는 뻥이라도 '역대급'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이름은 '이'였는데 이 또한 흔치 않은 이름이다. 율곡과 같은 발음이 나는 '이이'지만, 율곡은 귀고리 이(珥)를 쓰고 노자는 귀 이(耳)를 쓴다. 이름이 인디언의 그것처럼 특징적인 캐릭터를 드러내는 대유법으로 쓰인 셈인데, 노자는 태어나면서부터 귀가 커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귀나팔이 유난히 큰 그 아이를 담(聃)이라고도 불렀다. 귀는 컸지만 귓바퀴가 없는 점을 강조하여 붙인 이름이다. 귀가 크다는 것은 남의 말을 제대로 잘 듣는다는 의미이며, 신이 가리키는 자연의 말을 잘 듣는다는 의미이며, 역사나 공동체가 말해주는 큰 이야기를 잘 읽어낸다는 의미를 품는다. 성인(聖人)이란 말의 뜻 또한 귀밝은 사람이란 의미이니, 노자는 이미 자신의 이름에다 '성인'임을 밑줄 치며 다닌 분이라 할 수 있다.

노자는 지백수흑(知白守黑)을 말했다. 이세돌이 제4국에서 백을 쥐고 알파고의 흑을 이겼을 때, 그는 흑을 잡고도 한 판 이겨보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흑이 선수가 되면 중국식 바둑에서는 일곱집 반을 덤으로 준다. 이 경우 백이 약간 유리한 게임이 된다. 이세돌이 굳이 그런 승부를 자청했던 까닭은, 알파고를 완벽하게 이겨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흑을 지켜 백의 전략을 한번 알아보고 싶다? 이것도 지백수흑이 아닌가.


물론 노자는 바둑돌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 거시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백과 흑으로 나눴다. 큰 그림을 이해하고 세목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지백수흑은 동양화의 화론에도 쓰인다. '백'은 여백과 전체를 의미한다. 여백이 있는 전체를 잘 활용하고 먹이 들어가는 '흑'의 부분을 세밀하게 다뤄야 그림이 완전해진다는 뜻이다.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지백'이며, 현실적인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이 '수흑'이다. 노자는 200살까지 살았다고 하니, 281년의 귀밝은 인간이 터득한 최고의 지혜가 '지백수흑' 넉 자에 도사리고 있다.


늙은 선생님은 이렇게 속삭여준다. 흑을 쥐고 백을 알아보렴. 꿈이 없는 열정은 무모하고 열정 없는 꿈은 공허하지. 치열하게 꿈꾸렴. 알파고에 도전하는 인간을, 노자는 2500년 전에 예견하셨던가.






이상국 디지털뉴스룸 부장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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