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자궁경부암검사에, 20만원 검진 덤터기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권재희 수습기자] 최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산부인과를 찾은 대학생 설모(25·여)씨는 생리불순으로 병원을 방문했지만 부인과 검진 외에도 혈액형·신장 기능·간 기능·풍진·B형간염 검사 등 추가적인 검진이 포함된 패키지를 권유받았다. 설씨는 "자궁경부암일 수도 있다는 무서운 얘기를 들으니 불안한 마음에 검사를 하긴 했지만 학생 입장에서 20만원은 상당히 고액이라 망설여졌다"며 "스트레스성으로 월경이 늦춰질 수 있다는 의사 소견을 들으면서 당시 했던 검사가 꼭 필요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혼 여성이 받는 산부인과 검진 중에서 B형간염·비타민D 결핍·풍진 검사 등 불필요한 항목이 들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B형간염이나 비타민D 검사의 경우 자녀 계획이 있는 여성들만 받으면 되는 검진임에도 미혼 여성을 위한 검진 패키지를 구성해 놓고 더 높은 가격의 검진을 권유한다는 것이다. 보건계의 한 임상병리 전문가는 "같은 피검사라도 검사 항목별로 시약이 달라 항목이 많아지면 그만큼 비싸진다"며 "무분별하게 검사를 권유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대부분 여성들은 의사와 간호사의 권유에 따라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검사를 받게 된다. 직장인 이성은(29·여)씨는 "검진 항목에 혈액형 검사나 간 기능 검사가 포함 돼 있어 의아했다"면서도 "개별 검사보다 패키지로 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고 해서 그냥 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대 이상 여성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자궁경부암 검사도 사실상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받을 수 있다. 자궁경부암의 경우 20대 이상 여성들부터 무료 검진이 가능하다. 그러나 액상자궁경부세포 검사, 자궁경부확대경 검사, 인유두종바이러스 정밀검사 등 3가지 자궁경부암 정밀검사 중 액상자궁경부세포검사만 무료로 검진해주고 있어 병원을 방문하면 추가적인 검진을 권유 받는다.
혹시 있을지 모를 병의 진단을 권유하는 것은 의사의 소임이기는 하지만 학생 등 젊은 여성 수검자의 입장에서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 산부인과 검진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일반 진료비를 제외한 기초검사만 해도 10만원대인데 다른 검사까지 몇 가지만 추가적으로 시행하면 비용은 30만원대까지 올라간다.
일부 병원에선 직장인 여성을 상대로 실비 보험 가입 여부를 물으며 추가 검사를 받으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중구 명동의 한 산부인과 상담 간호사는 "의사 진단 결과로 추가 검진 받았다 하면 실비 보험 처리할 수 있다"며 기존 10만원대 검진보다 더 많은 항목 검사를 할 수 있는 20만원대의 패키지로 검진 받으라고 권했다.
최근 대학생을 포함해 산부인과를 찾는 20대 미혼 여성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자궁경부암이 가장 흔한 여성 암 1위로 꼽히면서 예방차원에서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미혼여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불규칙한 식습관 등으로 인한 생리불순 등 여성 질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마포구의 한 산부인과 관계자는 "내원하는 환자 중 10명 중 6~7명이 20대 미혼 여성"이라고 답했다.
산부인과 검진은 환자 본인이 100% 부담하는 비급여 항목인 만큼 의사들의 양심적인 진료가 더욱 요구된다. 박노준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병원마다 검진 비용이 천차만별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병원에서는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수준으로 금액을 책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권재희 수습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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