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폭발 시대…어떻게 해야 하나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울컥한 적이 있으신지요.
우리 사회는 지금 '분노 폭발 사회'라고 표현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겁니다. 개인의 분노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 사건. 끔찍한 이 같은 일도 '분노 폭발 사회'와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묻지마 폭행' '보복 운전' '층간 소음에 의한 폭행' 등 사회 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를 정신건강의학에서는 '감정적·충동적 공격성'으로 표현합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충동적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죠.
감정적·충동적 공격성은 '어떤 위협과 모욕, 자극 등 스트레스 상황에서 일어나고 심사숙고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며 행동과 함께 화와 흥분이 동반되는 경우'를 일컫습니다. 분노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이런 현상을 과연 개인적 원인으로만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요.
◆분노폭발 시대=인간은 누구나 분노의 감정이 있습니다. 정상인이라면 분노를 어느 정도 참는 경우가 많죠. '분을 삭인다'는 표현은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이는 상대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분노를 참으면 그만큼 가슴 속에는 불안, 우울, 죄책감 등이 쌓입니다. 이 같은 감정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에 분노가 폭발합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인 것이죠. 문제는 이 같은 분노폭발이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권일용 경찰청 경감은 "충동조절실패로 일어나는 범죄는 특정 상대에 대한 순간적 분노가 일어나고 반응적 공격 행동이 뒤따른다"고 설명했습니다.
◆현대인의 분노 정도는=하나의 연구결과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2012년 미국에서 3만5000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면담을 통해 충동성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10명중 2명 정도(17%)는 충동성 검사에서 충동적 성향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충동성은 남자가 여자보다 1.4배 많았습니다. 안용민 서울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미국의 연구결과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젊은 성인일수록,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충동적 사람이 많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신과 질환을 앓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충동성이 더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2012년 미국인의 연구결과 충동성을 갖는 사람들 중의 83%가 일생에 한 번 이상 정신과 질환을 앓은 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또 충동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리적 피해를 주는 경우가 9.3배나 높았습니다.
이 같은 분석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안 교수는 "정신질환이 분노폭발과 충동행동으로 이어진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연구결과는 참고수준이며 우리나라에 맞는 연구와 대책마련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분노폭발과 충동행동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연구하고 분석하면서 올바른 안전 네트워크를 만드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분노폭발과 충동행동=전문가들은 정신 질환 중 분노폭발과 충동행동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들 수 있습니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침해합니다. 반복적 범죄나 거짓말, 사기성, 무책임함을 보이는 정신질환입니다. 뇌의 전두엽이 손상됐을 때 반사회적 인경 장애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번째로 경계선 인격 장애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에 대한 자아상이 확고하지 못해 언제나 공허하고 불안한 감정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작은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고 감정 기복이 큽니다. 행동이 충동적입니다. 세 번째로 물질남용 장애가 있습니다. 물질남용 장애란 술이나 마약 등 특정 물질에 의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질 남용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분석해 보면 정상인과 다른 부분이 발견됩니다. 정상인들은 큰 보상을 받기 위해 잠시 참는데 반해 물질 남용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당장 얻을 수 있는 작은 보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이밖에도 조울증이 있거나 '주의력결핍-과다행동 장애' 등의 정신질환도 분노폭발과 충동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분노폭발 시대…어떻게 해야 하나=안 교수는 서구사회와 우리나라를 곧바로 비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 교수는 "산업혁명을 거친 서구사회는 200~300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개인의 가치관, 법률 제도 등이 발전해 왔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겨우 60년 정도 되는 짧은 기간에 산업화 등 모든 것을 진행해 오다보니 가치관 형성이나 관련 제도 등의 정비가 많이 뒤떨어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분노폭발과 충동장애를 치료하는 물리적 방법도 있습니다. 리튬이나 항우울제, 인지행동치료 등 치료 방법이 있습니다. 이 같은 치료제와 함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분석하고 진단하는 데 있습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분노폭발과 충동행동 등에 대한 기초 연구는 물론 다양한 통계자료가 부족하다"며 "연구 부족 등은 분노폭발과 충동행동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사회 전체 문제로 보기 보다는 개인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도 한 몫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19세기 말 유럽에 자살행위를 설명하면서 "자살행위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 원인에서 비롯된 사회 현상"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오창호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최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분노라는 현상이 단순히 특정 개인의 인성 문제 또는 우연적 문제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며 "중요한 것은 이 사회의 어떤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상이고 필연적으로 사회 현상과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