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내릴 때는 굼벵이처럼 천천히 내리더니, 오를 때는 총알처럼 잽싸게 올리더라."
기름값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불만이다. 국내 정유사들이 국제유가 하락 국면에서는 기름값을 일정기간 시차를 두고 내리더니, 국제유가가 반등하기 시작하니 기다렸다는듯 재빠르게 올린다는 것이다. 실제 국제유가가 반등한 이후 최근 2주간 휘발유, 경유 등 국내 기름값은 하루도 빠짐없이 올랐다. 한동안 내리막길을 걷던 기름값이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서, 내릴 때는 '2G급'이던 기름값이 오를 때는 'LTE급'이라는 원성이 나오고 있다.
21일 유가정보시스템인 오피넷에 따르면, 20일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된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당 1355.09원으로, 이달 7일 이후 14일 연속 올랐다. 휘발유 가격은 올해 초 ℓ당 1407.15원으로 시작해 최저점인 이달 6일(1339.69원)까지 꾸준히 하락했다. 이후 지난 7일 1339.72원으로 상승 반전한 이후 20일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자동차용 경유 또한 지난 6일(ℓ당 1087.61원) 저점을 찍은 후 7일(1088.15원)부터 20일(1109.41원)까지 14일 연속 올랐다.
이처럼 국내 기름값이 오름세를 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소비자들의 불만이 빗발치고 있다. 국내의 한 소비자는 "국제 유가가 떨어질땐 시차를 두고 반영하던 정유사들이 (국제유가)반등이 시작되자마자 기름값을 곧바로 올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울화통이 터진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최근 국제유가가 하루하루 등락을 거듭하며 오름세를 보이는 반면, 국내 기름값은 내림세 한 번 없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는 점도 소비자들의 불만을 가중 시켰다. 또 다른 소비자 또한 "최근 국제유가가 오름세이긴 하지만,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반면 국내 기름값은 최근 2주간 하루도 빠짐없이 올랐다"며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우리나라 수입 원유의 8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7일 배럴당 34.39달러에서 18일 37.42달러로 3% 가량 올랐지만, 5번 오르고 4번 떨어지는 등 등락을 거듭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소비자들에게 공급되는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하루도 쉬지 않고 올랐다.
이에 정유사들은 제품 공급가격이 실시간 공개되는 상황에서 기름값을 두고 '장난'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유사 관계자는 "국내 기름값은 원유(原油) 가격이 아니라 유류 도매시장 격인 싱가포르 석유현물시장의 거래가를 기준으로 결정된다"며 "오피넷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품 가격이 공개되고 있는 마당에 기름값을 (정유사)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기름값 인하 속도보다 상승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 국제유가 상승시기에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 비대칭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국제유가 상승기에 정유사 공급가격이 인상되고 더불어 주유소도 자체 가격 인상에 나서기 때문에 소비자가 느끼는 인상폭이 크고 체감 속도도 빠른 것으로 분석됐다.
과도한 유류세도 소비자들의 원성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다. 휘발유 가격 중 현재 64%가 유류세다. 유통비용·마진이 각각 5.4%인 것을 감안하면 유류세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가격 하락 시기에 소비자 체감 하락폭을 크게 줄어들 게 하는 원인이 된다.
정유사와 소비자 간 유가를 바라보는 '기준 차'도 한 원인이다. 소비자와 정부가 유가를 얘기할 때 흔히 인용하는 지표는 두바이유나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같은 원유가의 변동 추이가 그 기준이다. 원유가가 배럴 당 50달러에서 40달러로 20% 내렸으니, 국내 기름값 역시 20% 가량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석유 제품 가격은 싱가포르 석유현물시장의 거래가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소비자가 기름값에 불만을 갖는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며 "정유사, 주유소 등 석유사업자가 가격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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