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형 한화투자증권 대표, 자신의 블로그에 '지식노동과 직장 민주화' 글 올려..."나이 든 층 너무 많은 권력과 보상을 '착취적'으로 누려" 정면 비판..."직장 내 민주화 실천이 대안" 주장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한 '금수저 세대'가 '흙수저 세대'들에게 보내는 '반성문'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직장인·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대표가 지난 14일 자신의 블로그 '전환시대'에 올린 '지식 노동과 직장 민주화'라는 제목의 글이 그 주인공이다.
주 대표는 요즘 기회의 불평등을 호소하며 '흙수저' 신세를 한탄하는 젊은이들이 보기에 대표적인 '금수저 세대'다. 그는 1959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에 유학해 1985년부터 1995년까지 10년간 세계은행 컨설턴트로 일했다. 1996년 귀국 후에는 삼성증권ㆍ우리금융지주 등에서 금융 전략ㆍ마케팅의 전문가로 인정받아 승승장구해 최고위급 임원 자리를 두루 역임했다. 다른 자수성가한 이들처럼 흙수저 신세를 한탄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패기가 없다"는 등 질책을 늘어 놓을 법한 인물군에 속한다.
그러나 주 대표는 이 글에서 자신이 일했던 직장에서 겪은 해외ㆍ국내에서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나이 든 층이 너무 많은 권력과 보상을 착취적인 방식으로" 누리고 있는 한국의 직장 문화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직장내 민주화'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한국 직장인은 직급이 조금만 올라가면 몇 페이지 안되는 글도 자기가 처음부터 쓰지 않는다. 중간 간부만 되어도 직접 업무를 하지 않고 아래 사람에게 미룬다. 데이터도 직접 다루지 않고 글도 직접 쓰지 않는다"라며 "지식의 심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현장에서 멀어지니 원숙하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뛰지 않고 부하로부터 보고만 받으니 아래 사람만 더 볶게 된다"고 지적했다.
주 대표는 "나이가 든 사람의 지적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생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한국은 나이 든 층이 너무 많은 권력과 보상을 누리고 있다. 그것도 그 방식이 너무 착취적이다. 위계질서를 지나치게 남용한다. 군대 내무반 문화가 사회 전체를 휘어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동일 직장내 청년층 대비 장년층의 임금 비율이 지나치게 차이나 난다는 점을 그 사례로 들었다.
주 대표는 "초년생 대비 50대의 임금 배수가 너무 높다. 한국 사회에서 더 큰 문제는 내부자와 외부자 간 이중화이기는 하다. 공기업과 대기업 연봉과 중소기업 연봉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러나 그 이중구조는 대졸 초임에서만 있는게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장자들 사이의 이중화는 더 심할 것이다. 대한상의가 한일간 대기업 연장자 임금비교를 했으면 좋겠다"며 "이 모든 것은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갉아먹고 있다. 엄청난 낭비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선진경제가 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특히 "50대가 조기은퇴하라는 말이 아니다. (중략) 후배들 생각 좀 하라는 말이다. 50대의 사회적 역할은 후배를 길러주는 것"이라며 '직장에서의 민주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주 대표는 " 지금 50대 세대는 곧 은퇴하겠지만 젊은 직원들은 앞으로 20년, 30년을 더 다녀야 한다. 그 미래를 준비하도록 키워주어야 한다"며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정치권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진정한 개선은 사회 전반의 분권화, 투명화를 통해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개별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더 많은 민주화, 직장에서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지금 50대가 이것을 인식하고 직장에서의 자기 지위를 이용하여 직장 민주화에 좀더 의식적인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주 대표가 블로그에 올린 글의 전문이다.
<지식 노동과 직장 민주화 >
아침 커피를 같이 마시며 아내가 한 말을 듣고 생각난 김에 쓴 어제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느낄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한 것이 사실이라는 뜻일 게다. 그만큼 이 문제는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고 깊게 퍼져 있다.
몇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좀 길다.)
밥 버클리(Robert Buckley)는 내가 세계은행 리서치 본부에서 처음 일할 때 친하게 지낸 미국인 선배다. 나보다 약 15살 정도 많았으니 그 당시 막 50대에 들었을 것이다. 그가 한 말 중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20대는 이론을 배울 때다.
30대는 현장 실습을 통해 이론 적용을 배울 때다.
40대는 그 이론과 실습 경험을 결합해 본격적으로 일을 할 때다.
50대는 이런 경험을 살려 조직과 후배들을 길러 줄 때다.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인생 단계를 10 년 별로 나눈 얘기다. 처음 들었을 때도 상당히 그럴듯 하게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의 지혜를 새삼 더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직장 후배들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곤 한다.
또 다른 일화. 한국에 돌아와 삼성전자에서 시작해서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내가 했던 일은 하나 같이 그 프로젝트를 맡기 전까지 내가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도 안 해본 낯선 프로젝트의 연속이었다. 그 당시 거의 마흔을 바라보면서 귀국할 때까지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경제학과 경제정책만을 생각해보았을 뿐 민간 기업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국 경제와 기업에 대해서도 더욱 아는 바가 없었다. 그냥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부딪치는 수 밖에 없었다. 매번 절벽에서 뛰어 내리는 느낌이었지만 나중에는 그것에 대한 재미가 들기도 했다.
얘기가 샜는데,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게 아니라, 그렇게 계속 되던 프로젝트 중 삼성생명에서 일 할 때 맡은 어느 프로젝트가 끝나고 난 후 내 상사가 나에게 한 말이다. 사장과 다른 고위 임원들이 모두 모인 중요한 자리에서 차장인 내가 직접 보고를 했다. 그 발표가 끝나고 나서 그는 나에게 프로젝트가 잘되었다는 등의 칭찬 대신 의외의 코멘트를 남겼다.
나이 마흔에 이런 새롭고 복잡한 사안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한 장문의 분석 보고서를 쓸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자기라면 도저히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가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몰랐다. 그는 삼성 그룹에서도 유난히 똑똑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아직 한국 기업 풍습에 익숙하지 않을 때 였다.
나중에 점차 한국 기업의 업무 관행을 알게 되면서 그 맥락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한국 기업에서는 조금만 직급이 올라가도 보고서를 직접 쓰지 않았다. 윗사람은 아래 직원이 쓴 보고서나 결재안을 수정하거나 가필하기만 했다. 사장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라도 알고보면 대리가 쓴 보고서를 과장이 한 번 고치라고 하고, 차장이 또 한번 고치라고 하고, 부장이 또 한번 고치라고 하고, 임원이 또 한번 고치라고 해서 만들었다.
요새 들어 조금은 나아졌지만 큰 그림에서는 비슷하다. 조직에서 중간 간부만 되어도 초안을 자기가 쓰는 법이 없다. 그런데 모든 글은 처음 틀 잡는게 제일 어렵다. 제일 두뇌에 고통을 주는 일을 대리가 맡은 셈이다. 우리 회사도 대리, 과장이 쓴 어설픈 보고서를 내게 디밀고 딴청 부리는 부장들이 수두룩하다. 자기가 직접 쓴 글을 갖고 오는 경우는 희귀하다.
1999년인가 러시아가 디폴트 선언을 하자 그 다음 날 아침 각기 다른 다섯 부서에서 만든 보고서가 사장에게 올라갔다. 다섯 부서! 디폴트 발표 후 첫날이어서 모두 외신이나 이를 베낀 국내 신문을 참조하는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는데도 그랬다. 내가 보기엔 그냥 사장이 외국 신문이나 국내 신문을 직접 읽는 것이 훨씬 나았다. 읽어봤자 한국에서 딱히 취할 조치도 별로 없었다. 물론 그 다섯개의 보고서는 아무것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 대리들이 썼을 것이다. 상사들은 집에 안 가고 초안을 기다렸다가 문구 수정을 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만드는 과정을 본 두 보고서는 그랬다. 그럴바에야 자기들이 직접 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삼성생명의 내 상사 임원은 나이가 마흔이 된 내가 직접 아무도 만들어 보지 못한 회사 내부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고 문헌 조사를 해서 다각도로 검토한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직접 썼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직장인은 직급이 조금만 올라가면 몇 페이지 안되는 글도 자기가 처음부터 쓰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사장이나 임원이 직접 장문의 글을 직접 쓸 때가 많다. 이번에 힐라리 클린튼의 국무장과 재직 시절 사설 이메일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그 역시 이메일을 직접 작성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또 다른 일화. 몇년 후 외국계 컨설팅 업체로 옮겼더니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MBA를 거쳐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면 어소이엇트(associate)라고 부른다. 몇 년 일하면 매니저가 된다. 그 다음은 프린시펄(principal)이고, 그 다음이 파트너다. 컨설팅 회사는 보고서를 일반 보고서 처럼 쓰지 않고 발표용 슬라이드로 만들어 쓴다. 외국에서는 머리가 허연 50대 파트너들이 직접 슬라이드를 만드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수정하기 좋도록 연필을 들고 직접 그리는 것을 외국 사무소에서 여러번 보았다. 그런데 한국은 매니저만 되어도 슬라이드를 직접 만들지 않는다. 외국 파트너급들보다 나이가 새파랗게 어린 서울 사무소의 파트너들과 프린시팔들은 프로젝트 따내는 고객 관계만 관리한다.
또 다른 일화. 아내는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후 어느 대학교에 취직했다. 그들은 전임강사도 아니고 전임교원이라는 직급을 주었다. 명색이 영어학과인데 교수들은 대부분 국내 대학에서 학위를 했다. 그나마 아내를 추천해 준 선배는 국내에서 학위를 하면서 강사로 돌다가 자기 아내가 외국 회사에서 명퇴하며 받은 돈을 상납하고 들어갔다고 실토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버티기로 했다.
아내는 재직 도중 선배 교수들의 논문을 수도 없이 대신 써주었다고 한다. 학술진흥재단에 응모하려고 해도 정교수를 꼭 끼워야 응모할 수 있었다. 온갖 학사 업무를 맡아서 일하며 몇년 동안 기다렸지만 어설픈 국내 대학에서 학위를 한 다른 시간 강사가 전임 강사로 선정되는 것을 보고 그는 상심했다. 두 아이를 유치원과 보모를 맡기면서 시간에 쫒겨서 정신 없이 지내면서도 열심히 논문을 쓰는 그를 옆에서 보고 있었던 나는 남편으로서 미안하고 참담했다. 그가 그 당시 자기 논문만이 아니라 남의 논문도 써주고 있는 줄을 알게 된 것도 몇주 전에 그가 불쑥 말해줘서다. 더욱 미안했다.
그는 외국 대학으로 옮겼다가 다시 귀국하면서 국내 대학 전직을 단념했다. 나는 한국 사회가 아내 같은 사람을 학자로 쓰지 않는 것은 큰 손실이라고 믿는다. 그가 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접은 것은 대부분 나와 가족 탓이지만 그냥 정상적인 사회만 되었어도 그는 지금 훌륭한 교수로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일화. 2004년 우리금융에 가서 우리은행 사람들과 일을 했다. 은행 부장이면 대개 오십대 초반으로 일반 회사 임원급이다. 업무 논의를 위해 이들을 오라고 하면 부르지도 않은 차장급 직원을 꼭 대동하고 왔다. 업무를 물어보면 대답을 못하고 딴 곳을 쳐다본다. 자꾸 물으면 드디어 대동한 직원이 대답하기 시작한다. 묻기는 부장에게 물었는데 왜 당신이 대신 대답하느냐고 하면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은행은 과장에서 차장으로만 승진해도 업무를 직접 하지 않는다. 부장이면 자기 담당 업무의 내용을 잘 모른다. 창구에서도 옛날에는 뒤에서 신문 보다가 결제 사인 하던 과차장들이 요즘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웹서핑하다가 결재가 뜨면 마우스 클릭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 이게 한국이다.
한국의 인적 자원이 빠르게 퇴화(obsolescent)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동시에 작용한다.
첫째 고속성장기에는 필요한 기술과 지식이 빨리 변한다. 7~80년대 학교 다닐 때 배운 것은 원래도 부실했으니 직장에 나온 후 빠르게 쓸모가 없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그렇다.
둘째, 그런데 직장인 재교육 과정은 부실하다. 하급 직원용 교육은 있지만 고급 지식 노동자로서 필요한 지식이나 리더쉽 교육은 아직도 부실하다. 지식 노동자에게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능력, 개념을 갖고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인데 그런 교육은 지금도 안 시켜준다. 최신 흐름을 익힐 해외 컨퍼런스도 젊은 사람만 간다. 가 봤자 못 알아듣는다.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고, 밤에 시간 나면 회사 돈으로 술 마시고, 주말에는 퍼져 자거나 누군가의 공 돈으로 골프 친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중간 간부만 되어도 직접 업무를 하지 않고 아래 사람에게 미룬다. 데이터도 직접 다루지 않고 글도 직접 쓰지 않는다. 지식의 심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현장에서 멀어지니 원숙하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뛰지 않고 부하로부터 보고만 받으니 아래 사람만 더 볶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은 순식간에 퇴화된다. 직접 고민을 하고 지식을 새롭게 자기가 만드는 수고를 잠시만 하지 않으면 처음 십년은 버틸지 몰라도 그 후에는 완전히 퇴화된다.
모든 분야가 그렇다. 최고의 지식산업인 학계가 제일 심하다. 공무원도 그렇다. 회사도 그렇다. 언론도 그렇다. 기자 회견을 보면 외국 기자들은 4~50대 기자들도 많은데 한국은 새파란 젊은 기자 투성이다. 마흔만 넘으면 사실 확인도 안하고 대가가 된 양 컬럼을 쓴다.
나이가 든 사람의 지적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생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나이 든 층이 너무 많은 권력과 보상을 누리고 있다. 그것도 그 방식이 너무 착취적이다. 위계질서를 지나치게 남용한다. 군대 내무반 문화가 사회 전체를 휘어 잡고 있다.
그 좋은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동일 직장내 청년층 대비 장년층의 사람들의 임금 비율이다. 초년생 대비 50대의 임금 배수가 너무 높다. 한국 사회에서 더 큰 문제는 내부자와 외부자 간 이중화이기는 하다. 공기업과 대기업 연봉과 중소기업 연봉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러나 그 이중구조는 대졸 초임에서만 있는게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장자들 사이의 이중화는 더 심할 것이다. 대한상의가 한일간 대기업 연장자 임금비교를 했으면 좋겠다.
연장자 임금이 너무 높은 예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교사, 교수 임금 구조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교사와 교수들의 연봉이 너무높다. 그 중에서도 선임 교사, 교수들의 임금이 초임 교사, 교수들에 비해 너무 높다. 게다가 정교수들은 시간강사를 착취하고 정부와 기업 프로젝트를 받아 대학원생을 하인처럼 부리면서 연구비를 빼어 쓴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언론에 등장해 나라를 걱정하고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단다. 자기 코 앞의 부정의에는 눈을 돌린다.
이 모든 것은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갉아먹고 있다. 엄청난 낭비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선진경제가 될 수 없다.
내 말은 50대가 조기은퇴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 친구 밥 버클리가 말 한 것처럼 후배들 생각 좀 하라는 말이다. 50대의 사회적 역할은 후배를 길러주는 것이다. 회사 임원이든 정교수이든 그것을 해야 한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조금 덜 누리고 후배 양성이라도 좀 더 하라는 말이다. 고속성장기에는 우리도 젊을 때 그랬다, 이렇게 고생하면 너희도 우리처럼 나중에 등 따시고 좋아진다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안 그렇지 않은가? 지금 50대 세대는 곧 은퇴하겠지만 젊은 직원들은 앞으로 20년, 30년을 더 다녀야 한다. 그 미래를 준비하도록 키워주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정치권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진정한 개선은 사회 전반의 분권화, 투명화를 통해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개별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더 많은 민주화, 직장에서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지금 50대가 이것을 인식하고 직장에서의 자기 지위를 이용하여 직장 민주화에 좀더 의식적인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어제 글에 이상준 씨가 올린 댓글을 옮기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나이 든 세대가 자리에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들이 누린 것 보다 더 좋고 많은 기회를 다음 세대들을 위하여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자각 하지 못 하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세대가 누리고 있는 것은 그들의 지식 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전 세대의 철학과 역량과 봉사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나이 많은 세대가 다 물러가고 세계 일류 대학을 나온 30대가 그 자리에 앉는 다고 미래를 위한 기회가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의무와 책임감을 갖고 후대를 위하여 새로운 기회와 장을 만들어야 하고, 사회 시스템은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은 후대를 위한 기회를 만들고 젊은 사람들은 그 기회와 장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으며 선배들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확대 재 생산이 되고 순기능으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사명감과 시스템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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