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트렌드는 윤리적 기업·착한 기업인데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1.지난 연말 제주로 향하던 제주항공 소속 비행기의 기내 압력 조절 장치가 조종사 실수로 작동되지 않았다. 비행기는 고도를 3000미터 가량 급강하해 20여분간 비행했다. 승객들은 극심한 불안 속에서 '공포의 비행'을 견뎠다. 보름 뒤 제주항공 홈페이지는 마비됐다. 동시 접속 가능 인원인 3만명의 7배에 달하는 21만명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유는 특가 할인. 이날 제주항공은 일본 노선과 중국 노선은 3만3900원, 괌ㆍ사이판 노선은 5만8900원이라는 파격적인 할인 상품을 내놨다.
2. '친환경 클린디젤'이라는 말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폭스바겐의 일부 디젤 엔진은 인증 조건의 4배 이상, 실제 도로 주행에서는 기준보다 최대 30배 이상의 배출 가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폭스바겐이 사기를 쳤다"고 비난했지만 정작 폭스바겐은 월간 기준으로 한국에서 역대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폭스바겐코리아의 '무이자 할부' 공세에 '환경 스캔들'은 감쪽같이 뒤덮였다.
소비는 냉정하다. 국익, 혁신, 환경 등 이상적인 구호를 포장하고 있지만 실은 소비자 이익이 최우선이다. 사회공헌활동(CSR)이 활발한 '착한 기업'의 가치를 주장한 아치 캐럴 미국 조지아대학 교수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소비 메커니즘은 석학들의 이론보다 복잡다단하다. 소비는 현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다. 실제 소비에서는 기업 윤리를 저버린 회사가 내놓은 제품도 가격이나 할인 등의 요인에 따라 이미지 세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폭스바겐 디젤 사태는 이같은 소비의 복합성을 증명한다.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에 따르면 전국 성인남녀 90%는 이번 폭스바겐 이슈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이중 77%는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미할 것을 보는 이유에 대해 66%는 '기업 도덕성에 대한 무관심'을 꼽았다. 폭스바겐 사태에 대해 머리와 가슴이 따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 폭스바겐 판매량은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디젤 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해 10월 판매량은 전달대비 46% 줄었지만 다음달인 11월에는 자체 최다 월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전체 수입차 중에서도 가장 많은 판매량으로 60개월 무이자 할부라는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앞세운 덕분이다.
할인폭이 줄어든 12월에는 판매량이 줄었지만 지난해와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환경부가 폭스바겐 디젤차 6개 차종에서 배출가스 눈속임 장치를 확인하고 리콜 명령과 함께 14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파격 세일 전략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먹혀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내 폭스바겐 판매고는 전년보다 25%나 감소했다. 배출가스를 조작한 폭스바겐을 미국 소비자는 외면했지만 한국 소비자들은 다르게 반응한 셈이다.
소비가 공익적인 보다 사적인 요인에 더욱 영향을 받는 경우는 또 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수입 과일과 와인, 맥주, 커피 등의 가격은 세계 최상위 수준이지만 소비는 갈수록 늘고 있다. 수입 화장품의 국내 판매가는 해외에서 판매되는 동일 제품보다 두 배 넘게 비싸지만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폭스바겐 사태에서 확인됐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성향은 이미 기업윤리보다는 마케팅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며 "이는 자칫 품질 저하, 서비스질 낙후로 이어져 결국 소비자들에게 피해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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