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에서는 좋은 개념을 선점하고 상대방을 악의 축에 해당하는 개념에 가둬두는 전략이 위력적이다. 정의사회니 민생이니 하는 용어들이 전자라면 규제는 후자에 속한다.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는 세력이 규제를 통해 보호되는 것으로 주장하면 된다. 영미와 유럽에서도 지난 30년간 규제개혁이 화두였다. 특히 한국에서는 80년대 민간주도경제를 주장하고 세계화를 기치로 내건 후,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규제철폐가 지고지선의 가치인양 표방되고 있다.
정말 그럴까? 누구 말대로 규제가 죄악이나 암덩어리일까? 아니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시장경제를 운영하기 위해서 규제는 꼭 필요하다. 규제는 전체 국민을 위한 환경과 안전을 확보하고 버스노선 면허나 의사, 교사 등의 자격제에서 보듯이 공익적 활동을 보장해 공동체의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불로소득을 없애 공정사회를 이루고, 진입장벽을 허물어 경쟁을 촉진하는 조치까지 규제에 넣을 수 있다. 세월호의 운항이 규제 철폐로써 가능했던 사실에서 보듯이 규제는 국가의 존재이유이고 규제의 부재는 국가의 부재인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공익을 확보하고 공공복리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에 개입하는 활동이 널리 규제에 해당한다. 이를 어찌 대안 없이 철폐할 수 있겠는가. 되지도 않을 일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제12대 국회에서 제18대 국회로 가는 동안 규제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22건에서 2353건, 즉 10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렇다면 서슬 퍼렇게 규제가 적이라고 한 의도가 규제철폐를 주장하는 대기업의 편을 들려는 것이라는 의심이 이는데, 기업에 유화적인 정책을 편다고 투자가 증가하지도,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나지도 않았다. 미꾸라지 사이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의 생존본능을 일깨워 체질개선이 된다는데, 그 메기는 서민과 근로자, 중소기업이 아니라 사상 최대의 유동성을 확보한 대기업 영역에 풀어놔서 경쟁과 혁신을 촉진시켜야 하지 않을까?
물론 민간주도의 방향으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 변화하면서 규제의 기능과 방식은 변해야 한다. 시대상황에 맞추어 공공복리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실현하면서도 그 사회적 비용은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스마트규제, 영리한 규제이다. 그 예로 협력적 규제를 들 수 있다. 강행적인 방식에서 탈피해 규제대상자가 가진 정보와 노하우를 활용함은 물론, 규제목적을 납득시켜 상대방의 협력을 유도하고 경제에 동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국가와 경제단체의 대화를 통해 규제로 정할 기준을 상회하는 내용을 경제단체가 자기의무로 선언하여 강행적 규제를 피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러한 규제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한 이른바 기업형슈퍼마켓(SSM) 규제는 대기업과 영세기업의 이분법으로 문제를 볼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건물임대업자와 영세한 자영업자가 유입되어 골목상권을 형성하게 된 배경, 실제 소비자에 대한 유인까지 시야에 넣어야 한다. 상점이나 식당이 임대료 인상으로 인한 분쟁으로 문을 닫지 않아야 한다면 이는 다시 임대차규제와 결부되어 있다. 구멍가게보다 흔하다는 치킨집은 많은 경우 대기업에서, 즉 좋은 일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차린다는 점에서 고용 및 재취업정책이 필요하다. 또 지역투자를 활성화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소비자의 수요를 채울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할 것인가를 이해당사자와 같이 궁리해야 한다. 이렇게 정책은 복잡하게 서로 물려있다.
따라서 규제에도 소통이 필요하다.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구분하자고 하지만, 어떤 영역에서 어떤 방식의 규제가 필요하고 어떤 규제는 불필요한지를 사전에 일률적으로 정할 수는 없다. 원래는 좋은 의도로 만든 규제가 시행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를 낳기도 하고 사회경제적 조건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어느새 낡은 규제가 될 수도 있다.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안다. 규제를 평가하고 개선할 소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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