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한 확정 고시가 있었다. 여당은 역사전쟁이란다. 야당도 총력전이다. 공정한 해고인지, 쉬운 해고인지 정부가 노동법 개정하겠다고 할 때는 보이지도 않던 민주노총까지 나선다. 아직 쓰지도 않은 책을 친일과 독재의 미화라 하지 않나, 시중에 나와 있는 교과서는 읽지도 않고 좌파들의 암약이니, 종북이니 읊지를 않나. 도대체 국정교과서가 무엇인지 한 번 따져 보자. 여러 세력이 구미에 맞게 의미를 부여하기 이전의, 중량이 매겨지기 이전의 질량만 얼마인가.
이제 11월이다. 아무리 서둘러도 2016학년도에는 국정교과서를 정식 교과서로 쓰도록 만들 수가 없다. 잘해야 2017년 3월이나 돼서 발간될 것이다. 지금 분위기를 보아서는, 집필과 편집이 될 때까지의 1년여 기간 동안 내내 여론에 시달리리라. 집필진 선정부터 잡음이 일고, 편찬책임자는 장차 그 명단을 공개할 것인지도 망설이지 않는가. 그렇게나마 국정교과서가 발간된다 한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2017년 그러니까 내후년 봄이면, 적어도 경선정국이거나 빠르면 차기 대선주자들이 가시화돼 있을 때이다. 그때가 되면 모든 후보들은, 잠룡이든 잡룡이든, 국정교과서 이대로 좋으냐,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평시에는 몰라도 적어도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자유주의자이자 의회민주주의자가 되는 미덕을 갖고 있어서, 나무 위에 올라간 국정교과서 흔들기에 합류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 가서 또다시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려 해도 그리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발간준비를 하는 동안 생불여사의 상태인 국정교과서가 다음 정권 1년 동안 어쩔 수 없이 또 쓰일 수도 있다. 다음 정권이 누구 손에 쥐어질지는 몰라도, 설령 정권 재창출이 된다 한들 그냥 안고 갈 리는 없다. 오히려 지난 정권을 털고 가야 할 압박을 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회군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여론의 기억이 희미해 질 즈음에 국정화 방침을 취소해도 그뿐이다. 그 예산이 30억~40억원이라니 좀 비싸기는 하지만 어차피 1년 내지 2년 쓰일 입시용 교재일 뿐이지 않은가.
정리하자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현 정부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공감을 얻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 운명은 난산과 단명이다. 이번에 또 한 번 유명세를 탄 E.H 카는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그 사회의 성격을 뜻깊게 암시하는 것은 없다"고 했지만, 이번 국정교과서의 의미가 그렇게 깊을 것 같지는 않다. 훗날 국정교과서 사태 자체가 역사적 사실이 될 수는 있겠다.
언제나 그래왔다. 여권에서는 이슈를 선점하고 공을 차올리기만 하면 된다. 야당은 차올리는 공만 쫓아다닌다. 여권은 이미 야당이 국정교과서에 올인하느라 비워 놓은 민생이라는 공간을 보고 있다. 과연 민생 '드립'을 시전할 여력까지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야권은 지레 우왕좌왕이다.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동네 축구하느라 힘이 드니 운동장이 기울어져 보일 밖에. 애초에 국정교과서 반대특위 만들고 의원 몇 명에게 전담시키면 족한 문제였다.
그런데 여권의 뒷공간도 열려 있다. 이른바 헬조선으로 가는, 누란(累卵)같이 불안한 국정 말이다. 동네 슈퍼에서 라면 납품을 받는 것보다도 허술한 한국형전투기(KF-X)사업. 점차 빨라지는 양극화의 속도. 요지부동인 사교육비. 유례없이 낮은 출산율로 눈앞에 닥친 인구절벽. 아직 미제로 남아 있는 세월호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도대체 성완종에 막힌 MB청산은 언제 할 것인가. 이쪽으로 공을 찔러놓고 질주하기에는 태클이 두려운가.
바로 이 지점에서 국정교과서 논란의 배후에 있는 인식의 차이 역시 명백히 드러난다. 여기는 헬조선인가, 아니면 국정교과서로 주장하려는, 국민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가.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