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지난 26일 오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 성형외과 거리는 한산했다.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는 유명 성형외과 로비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이따금 성형수술을 마친 중국인 성형 환자만 눈에 띄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과 방학을 맞은 대학생, 연말모임을 앞둔 직장인 등 성형업계에서 연말은 최대 성수기.
하지만 국내 '성형메카' 강남의 성형외과들은 '삼중고'에 직면했다. 경기불황의 여파로 성형환자들이 지갑을 닫고있는데다, 유령수술과 탈세혐의까지 받으면서다.
가장 큰 타격은 가격경쟁에 따른 환자 감소다. 일부 병원들이 간단한 동안시술로 알려진 보툴리눔 톡신 제제(일명 '보톡스')와 필러 가격을 대폭 낮추면서 할인 병원으로 쏠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 이날 찾아간 서울 압구정동의 한 피부과는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간단한 주사시술로 '동안 얼굴'을 만들어주는 이른바 '쁘띠성형'을 위해 찾아온 손님들이다. 이 병원에선 업계평균 20만원인 사각턱 보툴리눔톡신 시술이 4분의1 가격에 시행됐다. 사각턱 보톡스는 턱에 보툴리눔톡신 제제를 주입해 얼굴을 갸름하게 보이게 하는 시술이다. 눈가 주름을 펴준다는 주름 보톡스는 3만원으로 인근 병원의 30% 가격에 불과했다.
반면 성형업계 '빅5' 불리는 대형 성형외과들은 쁘띠성형 비용을 내렸지만, 여전히 비쌌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한 성형외과는 사각턱 보톡스에 60만원을 불렀고, 또 다른 성형외과는 40만원에서 최근 20만원으로 낮췄다고 했다.
성형수술이 전문인 대형 성형외과에서 쁘띠성형은 손쉽게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캐쉬카우다. 성형수술은 대부분 마취가 필수인데다 고도의 기술과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보톡스나 필러는 주사 한방으로 시술이 끝난다.
성형업계의 가격경쟁은 중국산을 비롯한 다양한 보툴리눔톡신 제제가 개발되면서 원가가 저렴해진데다, 연말 쁘띠성형 수요를 노린 마케팅 전략에서 시작됐다. 강남의 한 피부과 관계자는 "연말은 기분전환을 위해 쁘띠성형을 하는 수요가 있는 시즌"이라며 "가격할인은 이런 수요에 대한 유도등인 셈"이라고 말했다.
올해 유행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여파로 위축된 성형시장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데다, 경기불황의 여파까지 겹치면서 가격할인 경쟁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대형 성형외과를 중심으로 유령수술 의혹이 불거진 점도 저렴한 소규모 성형시장을 형성하는데 한 몫을 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최근 지난해 유령수술 의혹이 불거진 신사동 G성형외과가 1000억원의 탈세 혐의를 받고있다고 폭로했다.
각종 의혹으로 대형 성형외과에서 환자가 줄면서 소속 의사가 개원하는 사례가 늘고있는데 개원 이벤트로 보툴리눔톡신과 필러 등 시술 가격을 대폭 할인하고 있다. 지난 10월 신사동에 개원한 한 성형외과에선 주름 보톡스가 5만원, 레이저 시술은 10만원에 이벤트 중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대형 성형병원에 대한 대리의혹이나 각종 수술 부작용으로 인해 환자들이 작은 병원을 더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보툴리눔 톡신이나 필러 시술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않고 저렴한 가격만 내세워 환자를 유인하는 경우 실명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필러의 경우 1차 시술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필러 성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2차 시술에 들어갈 경우 주사바늘이 혈관을 관통해 실명에 이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촌 지역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필러나 보톡스가 비교적 간단한 시술로 보이지만, 혈관구조를 잘 모르는 의사가 시술하게 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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