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낱말의 습격'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중국에 계신 어떤 분이 '한강'이란 명칭이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에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한 적이 있다. 한강의 한(漢)은 왜 우리나라 이름인 한국(韓國)의 한(韓)과 다를까.
중국의 역사는 한(漢)족의 역사이며,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사대주의(事大主義)로 가장 우러렀던 국가도 한족의 나라였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얘기할 때 가장 자신있어하는 논리는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하나는 중국이 극성하던 시절에 ‘중국의 땅’이 되었던 곳들을 실지(失地, 잃어버린 땅)로 해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게 고개 숙인 변방의 나라들은 결국 자주적인 국가라기 보다는 중국의 정신적인 속국(屬國)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해석들은, 사실 역사에 대한 아전인수(我田引水)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한강이란 이름에 쓰인 ‘한(漢)’은 어찌된 일일까. 우린 한(韓)민족인데, 그 서울 한복판에 ‘한(漢)’의 강이 흐르는 것일까. 중국이 이걸 근거로 한사군(漢四郡) 논리를 강화할 수 있는 걸까. 중국의 한나라는 BC202년에 건국되어 AD220년에 망한 나라이다. 그 중간에 왕망이 세운 신(新)나라(AD8년 - 22년)가 끼어 있기에 장안을 수도로 했던 그 이전을 전한, 낙양을 수도로 했던 이후를 후한이라 부른다. 삼국시대 초기 중국은 한강을 대수(帶水)라고 불렀다. 띠처럼 이어진 물길이라는 의미다. 광개토왕비에는 아리수(阿利水)라는 이름으로 칭해진다. 나는 ‘아리’는 ‘대(帶’를 표현한 우리말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원래 대(帶)는 단추가 생겨나기 이전에 두루 감은 옷을 고정시키기 위해 몸을 가운데를 질끈 묶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몸을 안는 것’을 ‘아리’(안+이)라 하지 않았을까. 그 활음조 현상은 ‘안음+들이’를 ‘아름드리’로 쓰는 용례가 이미 있다. 그러니까 중국이 말하는 대수(帶水)는 우리가 쓴 아리수를 번역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수(漢水)란 명칭이 나오는 것은 백제가 동진(東晋)과 교류하는 때 이후이다. 동진은 AD317년에 세워져 419년에 사라진 나라다. 한나라가 망한 지 100년이 지나 붙여진 이름인데, 이 강 이름이 한나라의 강이란 의미일 수 있을까.
중국에서 강(江)이란 말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장강(長江;양쯔강)을 의미했다. 하(河)라는 말도 황하(黃河)를 가리키는 고유명사 혹은 이칭(異稱)이었다. 그렇다면 이 땅의 모든 강과 하천들은 중국의 ‘지류’여야 한다. 강과 하(河)가 보통명사로 쓰이기 이전에 모든 강들은 수(水)로 불렸다. 살수대첩 할 때의 살수(薩水;청천강)가 그 예다. 한수(漢水)의 ‘수’는 그런 호칭이었다. 한수가 한강으로 된 건, ‘강(江)’이란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강이 보통명사로 바뀌듯, 한(漢)이란 한자 또한 그런 변화를 겪는다. 원래 한족은 한(漢) 주변에서 발흥한 민족이었다. 한(漢)은 양쯔강 상류를 가리킨다. 한(漢)은 물(水)과 난(難)이 합쳐진 글자로, 거센 물살이 이는 강을 가리킨다. 물결 탄(灘)이란 한자에 그 원형이 남아있다. 양쯔강은 대개 동서로 흐르는데, 이 한(漢)만은 남북으로 흘러드는 지류이다. 한(漢)은 한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은한(銀漢;은하수)이란 말은 은빛 강이란 뜻이다. 거기엔 남북으로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도 숨어있다. 그 흐름의 거셈이 상징화하여, 우직한 사내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인다. 치한(癡漢), 호색한(好色漢) 등이 그것이다. 한(漢)이 오로지 한나라만을 가리킨다면, 한족들이 유난히 치한이 많거나 호색한이 많아서 그런 걸까. 은한(銀漢)은 요즘에 와서 은하수(銀河水)란 말로 바뀌었다. 한(漢) 대신에 하수(河水;강)를 쓴 것이다.
한강이란 말은 ‘강’이란 말의 중복이다. 여기엔 이 땅의 자부심이 숨어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반도를 질끈 동여맨 ‘아리수’는 이 땅의 대표 강이다. 양쯔강이 강인 것처럼, 황허가 하(河)인 것처럼, 한강은 그냥 한(漢)이다. 굳세고 거친 물결이 중국의 양쯔강 상류에 필적할 만하다. 굳이 남북으로 흐르지 않고 동서로 흐르지만 이 강은 한(漢)이라 부를 만하다. 북한산(北漢山)과 남한산은 한강의 남북에서 병풍이 되는 산이다. 서울이 한때 한성(漢城)이고 한양(漢陽)인 것은 힘있는 물결을 품은 도시라는 의미이다. 아참, 한양(漢陽)이란 말은, 한강의 북쪽 만을 가리킨다. 즉 강북만 한양이다. 양(陽)은 북쪽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강남은, 한음(漢陰)인 셈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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