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최근 자산운용사들이 펀드 중도환매수수료를 속속 폐지하고 있지만 장기투자 전략을 추구하는 가치주펀드 운용사들은 환매수수료를 폐지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자산운용, 신영자산운용,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등은 현재 운용 중인 펀드의 환매수수료를 폐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들 운용사는 기업가치보다 주가가 싼 주식을 사서 오랫동안 보유하고 제 값을 받을 수 있을 때 파는 가치투자 전략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사장은 "펀드를 상장지수펀드(ETF)처럼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도록 하는 게 투자자 이익에 부합하는 지 의문"이라며 "투자의 단기화가 금융시장 안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등 부작용이 많아 환매수수료를 폐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도 "환매수수료를 폐지하면 펀드도 주식처럼 단기투자 대상이 될 것"이라며 "좋은 주식을 사서 오랫동안 보유한다는 우리 투자철학과 맞지 않아 환매수수료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가치주 펀드 운용사들이 환매수수료를 유지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은 장기투자 철학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환매수수료를 폐지할 경우 펀드 운용에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가치주 펀드는 중소형주 비중이 높고 유통주식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환매 물량이 빈번하게 쏟아지면 펀드 운용이 어려워진다. 특히 코스피가 2000선을 넘어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환매 물량이 쏟아지는 국내 투자문화 특성상 환매수수료 폐지는 펀드 운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관건은 판매사다. 판매사들이 펀드 판매 활성화를 위해 환매수수료 폐지를 요구하면 운용사 입장에서도 환매수수료 유지를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이상진 사장은 "장기투자를 위해 펀드를 최소 1년 이내에 환매하면 수수료를 물리는 게 바람직할텐데 오히려 수수료를 폐지하니 아쉽다"며 "판매사가 환매수수료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하지 않는 한 수수료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2004년부터 펀드 가입후 30~90일 이내에 환매하면 운용사가 기간에 따라 수익금의 30~70%를 환매수수료로 부과하도록 해왔는데 최근 환매수수료를 자율화했다. 환매수수료 때문에 투자자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익을 실현하지 못하고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투자신탁운용, 삼성자산운용 등은 이달 초부터 일부 펀드의 중도환매수수료를 폐지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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