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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돈이다]돌고도는 물레방아 인생…쩐의 생로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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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사망진단 한은 화폐정사실에서 하는데 작년에만 2조9800억원어치 폐기

[나는돈이다]돌고도는 물레방아 인생…쩐의 생로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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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같은 세상 돌고 돌아
정처없이 이 곳에서 저 마을로
기웃기웃 구경이나 하면서
밤이면 이슬에 젖는 나는야 떠돌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

중년들은 귀에 익을 거야. 가수 조영남이 부른 '물레방아 인생'이라는 노래지.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데 실은 돈(錢)의 인생도 마찬가지야. 만원짜리 지폐를 예로 들어볼까.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돌고도는 역마살(驛馬煞)을 타고났지. 그래서 저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운명처럼 '18번이구나' 싶었던 거지. 하지만 최근 들어 카드니, 비트코인이니 하는 사촌들이 마구 등장하면서 상황이 조금 바뀌긴 했어. 게다가 이 손 저 손 거치면서 '차카게 살자' 식의 문신 비슷한 낙서가 새겨지거나 찢기거나 잘리기도 하지.


◆ 쩐(錢)의 생로병사

한국은행이 측정한 1만원짜리 지폐 수명은 8년4개월이야. 5000원짜리는 5년5개월. 1000원짜리는 3년4개월. 인간으로 치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수명을 다하는 거지. 예전 지폐보다 인장 강도가 개선되긴 했지만 그래도 상처를 입기 쉽지. 화폐는 발행→유통→환수→정사→폐기라는 수명주기를 거치지.


화폐가 구겨지거나 훼손되는 걸 싫어하는 것은 수명 때문이야. 손상 상태가 심하면 한은에 실려 들어간 후 다시 살아나오기 어렵지. 여기서 쓸 돈과 버릴 돈의 운명이 갈리는데 한은의 화폐정사(整査)실이 운명을 가르지. 현금전용 트럭을 타고 한은에 들어가는 돈의 처절한 심정을,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


몸이 만신창이 돼 폐기된 화폐가 지난 해에만 2조9847억원에 달하지. 전년보다 7700억원 정도 더 늘어났어. 장수로 따지면 5억6000만장인데 5톤 트럭 103대분이야. 이 돈을 차곡차곡 쌓으면 5만9268m야. 63빌딩의 238배, 백두산의 22배, 에베레스트산의 7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지.


[나는돈이다]돌고도는 물레방아 인생…쩐의 생로병사 -


◆ 더러운 화폐 '수건 돌리기' 안돼…한은이 '콩팥' 역할


손상됐더라도 그냥 쓰면 안되냐고? 돈을 들여 신권을 꼭 발생해야 하냐고? 화폐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거지. 구멍이 뻥뻥 뚫린 돈을 누가 신뢰하겠어. 여기저기 문신이 가득한 지폐를 누가 받고 싶겠어. 생각해봐.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거스름돈을 받는데 더럽고 지저분하면 기분이 좋겠어. 교환의 매개기능, 가치의 척도기능, 가치의 저장기능이라는 화폐의 3대 기능을 지속시키려면 우선 외모가 멀쩡해야지.


다시 화폐정사실로 돌아가보자고. 사람 몸에 콩팥이 있어서 혈액 속의 불순물을 걸러주는 것처럼 한은은 시중에서 환수된 돈을 그냥 시중은행에 내보내는 게 아니라 청결도를 파악하지. 못 쓰겠다 싶으면 없애고 쓸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보내. 이런 화폐정사를 꼭 중앙은행만 해야 하느냐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나오지. 중앙은행이 화폐를 독점 공급하고 있으니 당연히 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시중은행들도 예금을 받고 돈을 관리하는 주체이니 화폐정사를 할 수 있다는 의견까지. 그렇다면 은행들은 어떨까. 10억원이 넘는 화폐정사기를 사는 것도, 인력을 투입해 화폐를 관리하는 것도 부담스럽긴 하겠지.


참고로, 세계 화폐정사기 시장은 독일 GND와 영국 DLR가 양분하고 있어. 한은은 독일 GND 정사기를 쓰는데 가격이 무려 15억원이나 하지. 지난 10월 한은 부산본부에서 일어난 5000만원 절도 사건도 중앙은행이 정사기를 통해 손상된 화폐를 걸러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거지. 정사 인원도 필요하고 돈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니 도난 사고의 위험은 늘 상존해. 한은이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지만 말이야.


◆ 화폐정사실에선 무슨 일이?


한은 대구본부의 정사실 금고를 예로 들어보자고. 이곳에는 근처 경산, 울산에서 온 화폐들이 모이지. 한데 모인 화폐들은 현금전용 승강기를 타고 자동정사실로 옮겨져서 독일 GND사의 정사기 앞 테이블에 1000장 단위 뭉치로 차곡차곡 쌓이지. 정사기 안으로 들어가면 센서들이 몰려들어 화폐를 검색해. 나이와 건강, 일련번호, 위조여부, 청결도 등을. 정사기는 위조 지폐도 걸러내지.


상태가 좋지 않은 화폐는 빠르게 도는 칼날에 분쇄돼. 조각난 몸들은 파이프를 타고 압축저장실로 가지. 거기 도착하면 다시 호퍼라고 불리는 압축기를 지나고, 그걸 다시 지나면서 지폐 조각들은 원통 기둥 모양의 압축 폐기물이 되는 거야. 생긴 모양은 커다란 가래떡 같지. 돈으로 시작해 가래떡으로 돌아가다니, 인생무상이지? 이렇게 화폐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끝나고 말지.


[나는돈이다]돌고도는 물레방아 인생…쩐의 생로병사 -


◆ 현금 없는 사회 온다? 글쎄…


혹시 집에 찢어진 지폐가 있다면 중앙은행에 가서 바꿔달라고 하면 돼. 3/4 이상 면적이 남아있으면 전액, 2/5이상 남아 있으면 반액을 돌려줘. 남아있는 돈의 면적이 2/5가 안 되면 가치는 0원이야. 이런 식으로 장판 밑에 있다가 습기나 곰팡이에 훼손된 화폐, 불에 일부가 타버린 화폐, 세탁기에서 돌려 찢겨진 화폐들은 각각의 가치에 맞게 새 돈으로 교환이 되지. 지난해 일반인들이 한은 화폐교환 창구에서 교환한 손상화폐는 29억6600만원으로 전년(26억2500만원)보다 3억4100만원(13.0%) 늘었어. 이중에서 지폐는 15억2300만원, 주화는 14억4300만원이야.


최근에 '현금없는 사회'니 뭐니 해서 화폐의 존재감과 위상이 약해지고 있긴 해. 극단적으로 현금 자체를 없애고 카드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언컨대 화폐는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 이유는 짐작하지? 나를 스토킹하는 부패 권력, 나 없으면 못 하는 사기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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