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일주일 새 선수 두 명이 축구팬들을 떠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쓴 차두리(35)와 이천수(34)가 은퇴한다. 13년 전 대표팀 막내들로 환희의 순간을 맛본 이들은 어느덧 작별의 순간을 앞두고 있다. 차두리는 7일 수원과의 슈퍼매치에서 은퇴식을 한다. 하루 뒤인 8일에는 이천수가 부산과의 경기가 끝난 다음 공식기자회견을 열어 고별사를 한다.
떠난다는 사실은 같지만 두 선수의 은퇴는 조금 다르다. 차두리는 화려하고 이천수는 고통스럽다. 은퇴를 결정하기 전 이천수는 "내가 떠난다면 누구보다도 힘든 선수가 될 것 같다"고 한 적 있다. 모가 나 있던 선수였다. 그를 천재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앙팡 테리블'이라는 별명도 붙어 다녔다. 그가 보여주는 남다른 자신감과 행동은 그를 빛나게 하는 무기도 됐지만 장애물도 됐다. 주변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경향 때문에 악동의 이미지가 강했다. 2007년 수원에서 훈련 불참으로 임의탈퇴, 2009년 전남에서도 항명 및 무단이탈로 임의탈퇴 징계를 받았고 2012년까지 중동과 일본에서 방랑 생활을 했다. 2015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데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더욱 은퇴를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이천수는 "내게 붙는 수식어 중에 '노력 없는 천재'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노력 없이 얻는 결과물은 없다. 그런 얘기를 듣는 게 가장 마음 아팠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기장에서는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스타일이라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그라운드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정말 힘들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고향팀 인천과의 헤어짐도 의미가 있다. 이천수는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인천과 계약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재계약 여부는 불투명했다. 선수들의 봉급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있는 인천의 재정상황이 문제였다. 재계약하지 않으면 다른 팀으로의 이적도 고려해 볼 만했지만 이천수의 최종 결정은 은퇴였다. 평소에 가족들이 있고 익숙한 장소들이 있는 삶의 터전, 인천에 대해 깊은 애정을 보인 이천수를 고려하면 은퇴는 인천과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별로도 보인다. 이천수는 "특히 고향 팀인 인천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함께한 인천 시민과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천수의 축구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가 평소 밝힌 대로 은퇴한 이후에도 축구계를 떠나지 않는다. 이제는 축구화보다는 구두를, 공이 아닌 마이크를 잡는다. 이영표, 안정환 등 최근 해설계에서 2002년 세대들의 활약이 대단한 가운데서 평소 방송에 능숙하고 입담이 있는 이천수의 합류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어 신선한 행보로도 보인다. 이천수의 올해 나이는 서른네 살이다. 축구선수를 안 했다면 다른 꿈을 꾸고 여러가지 도전을 충분히 해봤을 30대다. 이천수 인생의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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