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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탄생 100주년, 정주영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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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탄생 100주년, 정주영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 박명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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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기업인 정주영이 다시 돌아왔다. 그를 기리는 기념식과 학술 심포지엄, 음악회, 사진전 등 다양한 행사가 줄을 잇는다. 오는 24일은 현대그룹을 일으킨 고(故)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 하지만 지금 정주영을 말하는 소리가 높은 것은 단지 탄생 100주년이 그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징표다. 불굴의 '기업가 정신'에 목마르다는 뜻이다.


"이봐, 해봤어?"라는 짧고 강렬한 한 마디. 안 된다, 힘들다, 모르겠다는 말을 단칼에 무력화시키는 정주영식 어법이다. 이 말이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최고의 기업인 어록'으로 꼽혔다. 답답한 경제, 무력한 정부, 기업가 정신이 사라진 기업을 향해 국민들이 소리치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나의 기억 속에도 정주영 회장의 편린이 남아 있다. 거창한 경영철학이나 드라마틱한 기업 비화는 아니다. 취재원으로 만났던 그의 육성과 인간적 면모다. 경제 기자로 경제4단체를 맡았을 때 그는 정상의 대기업 총수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을 연임 중이었다.

정 회장은 매주 수요일이면 전경련에 나와 업무를 보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점심은 출입기자들과 함께 했다. 행사장에서도 자주 조우했고 단독 인터뷰도 몇 차례 했다. 2년 가까이 전경련을 출입하는 동안 정 회장과 줄잡아 60~70회는 대면한 듯하다. 그에 대한 기억은 세간의 강렬한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초심, 소탈, 낙관, 검약 등이 카랑카랑한 그의 목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정 회장과 첫 대면했던 1980년은 좌절과 고통의 시대였다. 민주화를 갈망하는 '서울의 봄'은 신군부에 밟히고, 경제는 2차 석유파동의 충격파로 파탄 지경에 내몰렸다. 기업에게도 신산의 계절이었다. 정 회장 또한 자동차 사업의 포기와 전경련 회장 퇴진이라는 양면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암울한 시절에도 그의 말과 표정은 늘 담담했다. "좋지 않은 일이 닥쳐오더라도 '이 시련은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신입사원 특강에서 했다는 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표정이었다.

한강개발 구상은 하나의 사례다. 1980년 가을,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던 정 회장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 "세계 어느 나라 수도에도 한강같이 훌륭한 강은 없잖아요. 한강을 세느강이나 라인강처럼 만들면 어떨까. 내가 돈 한 푼 안 받고 해낼 수 있는데…." 허황한 얘기로 들렸던 한강개발은 1년 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구체화, 지금의 한강으로 탈바꿈하는 출발점이 됐다. 신군부 세력과 불편한 관계 속에서도 정 회장의 상상력과 사업가적 촉수는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검붉게 죽어 있던 허벅다리의 충격도 생생하다. 여름 어느 날, 기자실을 찾은 정 회장이 돌연 허리띠를 풀더니 바지를 쭉 내려 버렸다! 깜짝 놀란 기자들을 그가 불러 세웠다. "한번 만져봐요." 검붉게 물든 한쪽 허벅지로 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당시 66세였던 그가 신입사원 수련회 씨름판에서 20대 신입사원과 맞붙었다가 쓰러지면서 입은 상처라고 했다. 열 마디 말이 필요 없는 화끈한 소통법이 아닌가.


식사 때면 늘 식당 방문 앞 한 가운데 놓여 있던 커다란 구두도 생각난다. 앞쪽이 접히고 접혀 가죽이 자글자글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군가 왜 낡은 구두를 그렇게 오래 신느냐고 묻자 정 회장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편하잖아요." 빈한한 농촌 출신에서 정상의 기업인으로 발돋움한 후에도 그는 궁핍했던 때의 초심을 결코 잊지 않았다.


금융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09년 정 회장과 얽힌 이런저런 일화를 떠올려 책을 쓴 적이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 온 책 제목은 '경제 위기? 나 이길 수 있어?'였다. 정 회장 말투를 패러디한 것이 분명했다. 내키지는 않았으나 전문가의 안목이니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책 제목은 부진한 판매에 대한 좋은 위안의 도구가 됐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으나 경제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고, 세상은 다시 정주영을 말한다. "맞서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그의 결연한 한 마디가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






박명훈 주필 pm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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