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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덕담 건배사'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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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덕담 건배사'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 박명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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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필승. 건배사 한마디가 지난주 정치권을 흔들었다. 여당의 총선 승리에 총대를 멘 듯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직설적 어법이 파문의 진원지다.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내년 4월. 8개월이 남았다. 계절이 세 번 바뀌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것은 일반인들의 한가한 얘기다. 정치인들의 마음은 벌써 '총선 콩밭'에 가 있다. 가슴은 타고 시간은 없다. 여야가 따로 없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하느니, 현역 10%를 걸러내느니 하는 말이 나올 때마다 술렁이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정치권의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서, 집권당 의원 연찬회장에서, 선거관리 부처의 장관이 '총선'을 외치고, 의원들은 '필승'으로 받았다. 야당이 조용히 넘어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새정치민주연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 장관을 고발하는 한편 탄핵소추안을 발의키로 했다.)

정 장관이 누구인가. 선거 사무를 담당하는 부처의 수장에 더해 총선 출마설이 나도는 인물이다. 새누리당은 '덕담' 수준이었다고 슬쩍 넘기려 했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이 정 장관의 입에서 불쑥 총선이란 단어가 튀어나온 게 사실이라면 그것이 더 큰 문제다.


정 장관의 건배사 파문을 보면서 개인적인 '오페라 스트레스'가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요즘 오페라 증후군이 나를 압박한다. 한 문화단체 가을철 프로그램의 오페라 강의를 듣기로 한 게 발단이다. 제대로 아는 노래 한 곡 없는 열등감을 조금이라도 벗어나 볼까 해서 내린 나름의 결단인데 수강 신청을 하면서부터 걱정이 앞섰다. 2시간 넘는 시간을 견뎌 낼까, 제대로 알아듣기는 할까. 강의일정표를 보자 근심은 더 커졌다. 제1강 주제는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Pagliacci). 듣도 보도 못한 오페라다.

오페라에 마음 쓰다 보니 묘한 현상이 나타났다. 친구와 만났을 때 불쑥 오페라 얘기를 꺼내는가 하면 보이지 않던 오페라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일간지는 지난주 오페라를 소개하는 특집을 3페이지나 실었다. 어제 저녁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갈라 축제가 열렸다. 해외 오페라 공연을 실시간 중계하는 극장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오페라 페스티벌 현장을 찾아가는 해외여행 상품이 있는가 하면, 유튜브는 오페라의 바다였다.


줄곧 곁에 있었던 오페라가 눈에 들어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무관심이다. 관심이 없으면 눈은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생각에 빠져 잘 아는 사람을 그냥 지나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에 몰두해 신호를 보지 못하고 무단 횡단하다가 크게 다친 행인의 이야기가 얼마 전 뉴스에 나왔다. 몰입과 무관심의 무서움이다.


정 장관의 '총선 승리'가 무심결에 나왔다면 큰일이라 생각한 이유가 바로 그런 점이다. 그의 뇌리에 총선이란 단어가 깊이 입력돼 있어 여당 의원들의 얼굴을 보자 자연스레 덕담이 튀어나온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나 '선거관리 주무장관'이란 중한 책무는 무관심 내지 무자각의 영역으로 밀려났는지 모른다.


정 장관의 건배사보다 더 큰 걱정은 박근혜정부의 중심에 새누리당 현직 의원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 정부에서 의원을 겸하는 장관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우여 사회부총리를 포함해 5명에 이른다. 그들이 내년 총선에 나가려면 선거 90일 전(내년 1월 초)까지 장관에서 물러나야 한다. 박 대통령이 한눈팔지 말라고 몇 차례 경고했지만 쏠리는 마음을 막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의원 겸직 장관들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국정의 많은 부분은 총선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하물며 총선의 눈으로 본다면 모두가 총선용이다. 오페라에 몰리니 세상이 오페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당장 다음달에 국회 심의가 시작되는 내년 예산부터 그렇다.


총선이 어른거려 선심성 정책에 자꾸 손이 가고 장밋빛 전망을 쏟아낸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여당 연찬회에서 "내년에 (성장률이) 3% 중반 정도 복귀할 수 있도록 해 총선일정 등에 도움이 되도록…" 운운해 정 장관과 함께 고발당한 최경환 부총리의 사례는 하나의 상징이다.






박명훈 주필 pm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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