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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리더십]'禁女 벽' 깬 당찬 제주 소녀, 하늘을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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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최초 여성 부기장·최연소 기장 송찬미
20년 전 제주 풀밭 누워 꾼 하늘꿈
6000시간 비행 베테랑 조종사로


항공운항학과 시절, 9·11 테러로 채용 확 줄어 좌절
태안비행장 첫 솔로 비행…조종사 꿈 다시 다졌다

"기장과 의견 차이 있을 때는?" 제주항공 면접 질문에
"일단 매뉴얼을 보겠습니다." 답변했더니 합격 통보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제주도 사는 사춘기 여중생 셋이 푸른 잔디가 넓게 펼쳐진 초원에 누웠다. 하얀 구름 두둥실 뜬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누구랄 것도 없다. '아! 저 파란 하늘 한 번 날아 봤으면!'


새처럼 하늘을 날고자 하는 막연한 욕망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날 잔디에 누워 하늘에 푹 빠졌던 한 여중생은 불과 10여년 만에 조종사의 꿈을 이뤄 냈다. 1년 365일 주어진 시간 중 10%는 하늘에서 보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경비행기 첫 솔로 비행에 성공하면서 느낀 짜릿함을 안고 사는 그는 어떤 삶을 살아 왔을까. 제주항공 최초 여성 부기장과 최연소 기장 타이틀을 가진 송찬미(32) 기장의 이야기다.

[W리더십]'禁女 벽' 깬 당찬 제주 소녀, 하늘을 날다 송찬미 제주항공 기장이 제복을 입고 자사 모형 항공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 기장은 제주항공의 최초이자 최연소 여성 기장이다. ▲1983년 제주 출생 ▲2000년 초경량 비행기 자격증 획득 ▲2002년 신성여고 졸업 ▲2007년 한서대 항공운항학과 졸업 ▲2007년 비행교육원 교관 ▲2007년 12월 제주항공 부기장 입사 ▲2013년 2월 제주항공 기장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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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에 빠진 여중생, 조종사 꿈을 꾸다= 어느 날 문득 조종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는 다급해졌다. 일단 뭍에 있는 공군사관학교를 들어가야 조종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는 모뎀을 꽂아 인터넷 연결을 겨우 할 때였는데 그의 집 전화는 자주 불통이었고, 전화요금도 많이 들었다. 인터넷 검색 외에 정보를 접할 길이 없었다.


"입시에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초경량 비행기 자격증을 따러 무작정 상경한 것이 제 꿈을 향해 첫 발을 디딘 셈이 됐어요."


제주에서 엄마와 함께 안산비행장 교관 전화번호만 들고 찾아 갔다. 그 당시 가장 저렴한 초경량 비행기 엑스에어(X-AIR)를 20시간 타는 데 200만원이었다. 숙소도 없었던 둘은 첫 날 이름 모를 교회에서 잠을 잤다. 한 달은 교인 노부부의 집에서 생활했다.


비행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야말로 무지했고 의욕만 앞서던 때다. 한 달 훈련이 끝날 즈음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첫 솔로 비행에 나섰다.


송 기장은 "태어나 처음으로 성취감이라는 걸 느꼈다"며 "어려서부터 꿈속에서나 봤던 홀로 비행하는 나의 모습과 그때 느낌이 어찌 보면 꾸준히 이 길을 걷게 한 동력이 아니었나 싶다"고 회상했다. 대입 수능을 치르고 그가 택한 학교는 한서대 항공운항학과였다. 공군사관학교는 부족한 성적 탓에 포기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 됐다.


그는 "대학에 가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나를 가로막았던 장애물이 오히려 나중에는 나를 도와줘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태안비행장 1호 솔로 비행 날다= 미국 9·11 테러는 첫 슬럼프를 안겨 줬다. 전 세계 항공업이 무너지면서 조종사를 뽑는 곳이 확 줄었다. 비공식적인 소식이었지만 여성 조종사 자리는 없다고 봐야 했다.


1년 휴학을 하고 영어에 '올인'하는 쉬어가는 길을 택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 왔다. "불투명한 미래가 막막하지만 조종사가 너무 하고 싶다"며 눈물 흘리는 제자에게 은사님은 "인생사 새옹지마"라며 "조종사 자격증을 따 놓으면 언제 어떻게 기회가 올지 모르니 좌절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또 한 번의 슬럼프는 3학년 2학기 비행 훈련을 시작하면서 찾아 왔다. 비행이 생각대로 안 됐다. 비행 적성이 아닌가 고민이 깊었다. 때마침 새로 생긴 태안비행장은 슬럼프를 한방에 날려버린 것은 물론 훗날 조종사로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 확고히 갖는 계기가 됐다.


한서대 항공운항학과 2기생은 태안비행장에서 첫 훈련을 했는데 송 기장이 전체 중에서 첫 솔로 비행 기록을 남겼다. 졸업 후에는 그곳에서 교관으로 지내며 뼈를 묻을 생각까지 했다. 태안비행장 1호 솔로 비행 타이틀은 그에게 자랑거리다.


◆내 평생 운 다 바친 제주항공= "비행 도중 기장과 부기장이 의견 차이가 있으면 어떻게 할 건가?" "항공기 안에 있는 매뉴얼을 보겠습니다."


제주항공이 처음으로 여기장을 뽑기로 한 것은 3차 면접 자리에서 송 기장의 답변 때문일 지도 모른다. 조종사의 '파워 디스턴스(power distance·권력 거리)'와 관련한 좋지 않은 사례를 지적하면서 평소 '매뉴얼'의 원칙을 강조했던 은사님이 떠올랐다고 했다. 2007년 제주항공은 총 12명의 조종사를 뽑았는데 여성은 그가 유일했다.


"제가 최초란 단어를 좋아하긴 하나 봐요(웃음). 어쩌다 보니 최초 타이틀이 많은데 좋아하는 것에 끌린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것일까요? 끊임없이 좋아하는 것(비행)을 머릿속으로 생각해 와서 그런 것 같아요." 겸손한 그다.


제주항공에 막상 합격하고 나서는 덜컥 겁이 났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한 우물만 판 인생이지만 큰 시련 없이 하루아침에 항공사 조종 업무를 맡는다는 것이 심적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송 기장은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찾아 와 두렵긴 했지만 인생에 3번의 행운이 주어지고 내 인생에도 운이 있다면 제주항공에 입사한 이후 더 이상의 운은 없어도 좋다는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합격 발표 날 그는 은사님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저, 너무 높이 날아올라서 너무 깊이 떨어질까봐 무섭습니다." 은사님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지금도 그를 지탱하는 힘이다. "날개 있잖아?"


송 기장은 끝으로 "주변에 꿈이 없는 사람이 안타깝다"며 "꿈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하지만 만약 꿈이 없다고 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꿈을 갖고 한 방향으로 꾸준히 가면 안 되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송찬미 제주항공 기장은 누구…
◆최연소? 나이가 경력은 아니잖아요= 2008년 11월. 대한민국 '금녀(禁女)의 벽'이 하나 더 깨졌다. 민간 항공 60년 사상 처음으로 여성 기장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당시 국내 민간 항공 조종사 3600여명 중 여성은 10명 안팎에 불과했는데 여성 기장은 대한항공에 2명 뿐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현재 상황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저비용 항공사(LCC)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여성 조종사 인력 수급에는 숨통이 다소 트였지만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은 게 현실이다.


여성이 '라인(Line·민항기 조종 업무)'에 들어오는 길은 열렸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고정관념도 있다. "여자가 비행기를 조종한다고?" 부정적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송찬미 제주항공 기장은 올해로 기장 3년차다. 2013년 2월 기장으로 승격했다. 부기장 경력 4년을 합하면 제주항공에서만 만 8년 비행 경험을 쌓았다. 제주 출신인 송 기장은 한서대 항공운항학과 2기 졸업 후 비행교육원 교관 활동을 하다 2007년 제주항공에 부기장으로 입사했다. 이때만 해도 '최초 여성 부기장' 타이틀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최연소 기장'이라는 수식어는 왠지 불편했다. 송 기장은 "최연소는 의미가 없다"며 "항공사에 입사해 부기장을 거쳐 기장으로 승격하기까지 몇 년, 몇 시간의 비행 경력을 쌓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물다섯에 입사한 그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한동안 콤플렉스였던 '어리다'는 시선을 극복했기에 가능했다. 나이가 경력을 말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다.


송 기장은 "어린 여자가 비행기를 조종하니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주위 시선에 하루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던 적도 있다"며 "조종사는 한 번의 비행에서 수백 명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고정관념이 강한 직종일 수밖에 없다"고 이해했다. 송 기장은 하늘에서만 6000여 시간을 지낸 베테랑 조종사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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