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초대석] '법조개혁' 기치 내건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의 도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육군 통신병으로 현역 복무를 하다가 만기 제대했다. 바로 그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때 나이가 29살이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대한변호사협회 집무실에서 만난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61·사진)의 얘기다. 그는 1시간30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법조인 인생 30년의 삶을 공개했다.
그는 이른바 '삶의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다. 하 회장은 꿈을 눈앞에 두고 거듭된 실패를 맛보았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사법시험에 5번이나 떨어졌고 6번째 도전 끝에 합격했다. 한창 공부를 해야 할 사법시험 준비생에게 병역은 큰 산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당히 현역 복무를 마쳤고 합격까지 이뤄냈다.
하 회장은 1986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당당하게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법조계는 난공불락의 성과 같았다. 당시는 판사, 검사 출신 전관(前官) 변호사들의 위세가 지금보다 훨씬 더 대단했던 시절.
하 회장은 동기들보다 합격이 늦었고 군 복무도 마쳐서 나이가 더 많았다. 면전에서 괄시당하기 일쑤였다.
"처음 변호사가 돼서 법정에 갔는데 '하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출신이냐'는 얘기를 들었다. 판사·검사도 안 해본 사람이 무슨 변호를 한다고 법정에 나왔느냐는 얘기였다."
하 회장은 순수 재야 변호사 출신 법조인이다. 판검사 출신들은 그를 얕잡아보기도 했다. 하 회장은 법조계의 비뚤어진 권위와 만연한 부조리를 온몸으로 겪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법조계를 파고 들었다. 30년 만에 변호사들의 대표인 변협 회장에 올랐다. 그렇다고 이 자리가 종착지는 아니다. 그에게는 아직 못다 이룬 꿈이 여럿 있다. 우선 법조계의 부조리를 따갑게 찌르는 '가시'와 같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사법개혁을 향한 그의 실천은 이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하 회장은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막았고, 박상옥 대법관에게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겠다는 '국민 서약'을 받았다"면서 "대법관 출신이 변호사로 개업해서 전관예우(前官禮遇)를 통해 거액의 돈을 버는 관행을 막겠다"고 말했다.
대법관 출신은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는 하나의 전통을 만드는 데 변협이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법적으로 변호사 개업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여론의 힘을 통해 대법관 스스로 실천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하 회장은 사법개혁을 위해서는 가장 큰 힘을 지닌 대법원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는 하 회장은 최근 대법관 후보자 선발 과정을 둘러싼 비밀(?)을 털어놓았다.
하 회장은 2007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에 당선된 이후 '법관 평가제'를 최초로 시행한 인물이다. 재판 과정에서 법관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평가해 공개하는 제도로 현재는 연착륙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관 평가제를 통해 '하위 법관'으로 평가받았던 한 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로 심사 대상에 올라왔다. 이 사람을 후보로 추천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자료를 제공했다. 결국 심사에서 탈락시켰다."
하 회장은 "앞으로도 하위 법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대법관이 되지 못하게 하겠다"면서 "편파적이고 부적절한 언행을 해서 하위법관으로 선정된다면 대법관의 꿈을 접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변협 회장은 '법조 3륜'인 변호사단체의 수장이다. 법조계의 산적한 현안과 풀어야 할 과제도 하나둘이 아니다. 그중에서 사법시험 존치 문제는 법조계의 '화약고'다. 변호사 단체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안이다.
사법시험은 2017년 폐지될 예정이지만 하 회장은 존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범 이후 지금까지의 역할과 성과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입장이다.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배출 숫자를 현재보다 줄이고 사법시험 역시 존치해 법조인 배출 통로로 남겨둬야 한다는 얘기다.
하 회장은 "로스쿨이 만들어지면서 사법시험 제도로 발생한 여러 문제가 해결되기도 했지만 비싼 학비 때문에 돈이 없는 서민의 자제가 법조인이 되는 길이 막혀 있다. 사시 존치를 통해 '희망의 사다리'를 남겨두자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변호사업계의 경쟁 심화와 청년 변호사의 일자리 문제는 하 회장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요인이다. 변호사업계의 현실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게 변호사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감옥에 있는 부유층의 말동무 역할을 하고자 매일 교도소에 출근하는 '집사 변호사' 문제는 변호사업계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처럼 변호사들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역할도 마다치 않으며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 회장은 "올해 배출된 변호사는 월급이 250만원까지 떨어졌다. 연봉 3000만원 수준이다. 일반 대기업 취업보다 못한 실정"이라며 "공급이 압도적으로 많아 250만원 받는 자리도 구하기 힘들어 취업을 못 하는 변호사도 많다. 개업하는 변호사들은 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하 회장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소송에 나설 경우 미국처럼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대리할 수 있도록 국가소송 관련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 회장은 "(지자체에서 변호사를 고용하면) 일자리도 창출되고 승소율도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하반기 현실화될 법률시장 개방도 변호사단체가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과제다. 하 회장은 "법률시장이 개방되더라도 국내 기업들은 동요하지 말고 국내 법률시장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국내 로펌(법무법인)과의 자문관계를 유지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 회장은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사법시험 존치 문제도 그의 임기 내에 어떤 형태로든 결론이 날 전망이다. 법률 시장 개방 역시 하 회장 임기 중에 경험하게 될 일이다.
하 회장은 국민과의 호흡을 강조했다. 법조계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스스로 변화하고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 성원과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깨달음에는 하 회장 법조 인생 30년의 교훈이 녹아 있다.
"변호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해 밑바닥에서 위를 보고 살았다. 너무 고칠 게 많다는 것을, 사법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됐다. 특별히 의도한 게 아니라 자연히 눈에 보였다. 그때 품은 뜻을 30년이 지나 변협 회장이 돼서 실천하려고 한다. 임기 2년 내내 사법개혁을 이어가겠다."
대담=류정민 사회부 차장
정리=박준용 기자
사진=최우창 기자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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