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한국은행이 고심 끝에 8월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내렸다. 예상된 행보였지만 이날 결정 자체는 쉽지 않았다. 중국발 환율전쟁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한국도 기준금리 인하 카드로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끝까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금통위원들은 1시간여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조치에 따른 영향과 국내 경제상황 등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펼쳤다. 1시간 후 금통위원들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사태가 진정세에 접어든 만큼 당장 환율전쟁에 뛰어들기 보다는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종합적인 경기 부양정책의 효과를 지켜보는 게 낫다는 데 뜻을 모았다. 미국의 금리인상 예고와 함께 가계부채 부담 등을 고려하면 섣불리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인식도 여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발 환율전쟁의 충격이 예상보다 커진다면 한은도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할 수 있다는 시장의 경계심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 "좀 더 지켜보겠다"=한은이 환율전쟁 동참에 주저하는 최대 요인은 가계부채다. 작년 8월 이후 4차례 금리 인하와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내놨지만 7월 은행권 가계대출은 전달보다 7조4000억원이나 늘었다. 2008년 통계작성 후 7월 증가액으론 최고치다. 또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사상 처음으로 600조원도 넘어섰다. 이같은 상황에선 가계부채 관리 방안의 효과를 어느 정도 확인한 후에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이르면 9월 미국이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강화된 점도 금리 동결에 힘을 실어준 요인이다.
추가 금리 인하를 압박할 만한 이렇다 할 악재도 없었다. 한은이 지난달 우리 경제의 성장 전망을 2.8%로 대폭 낮추기는 했지만, 선제적 금리 인하가 단행됐던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하를 압박할 만한 요인이 없었다. 소비자심리지수와 제조업 심리지표 등은 지난 7월 소폭이나마 개선되는 등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여파에서 벗어나는 흐름을 보였다. 지난 6월의 광공업생산도 전월 대비 2.3% 늘어 4개월만에 증가세로 전환되는 등 긍정적인 흐름을 나타냈다.
금통위 이틀 전 중국이 급작스럽게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섰지만 기준금리와 환율간의 관계도 명확하지 않다. 위안화 평가절하로 수출의 부진 등 불안감은 상존하지만, 경기의 추가 둔화 신호가 크게 나타나지도 않았던 만큼 금통위도 경기 추이를 시간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실장은 "기준금리는 외환정책수단이 아니다"며 "환율 때문에 섣불리 기준금리를 조정했다간 기대 효과를 걷지 못하면 데미지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中 복병 가세…추가 인하 기대감은 여전= 이번 달 금리는 동결됐지만 연내 금리가 추가로 인하될 수 있다는 인식은 점차 확산하는 추세다. 특히 중국이 경기를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위안화를 큰 폭으로 절하하면서 수출 중심 국가인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가뜩이나 수출 시장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발 복병으로 한은의 새로운 경제전망치인 2.8%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팽배해졌다. 지난 7월 수출은 전년동월대비 3.3% 감소해 올해들어 7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금통위의 추가 금리 인하를 압박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김문일 유진투자선물 연구원은 "8월 기준금리는 동결됐지만 금리인하 기대감은 여전하다"며 "중국이 위안화를 대폭 절하해 중국 수출 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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