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부동산부 김민진 차장
게임에는 룰이 있다. 룰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시비가 빈번한데 그건 스포츠 경기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기업 활동에서도 게임의 룰은 종종 시비거리가 된다.
룰은 한쪽에만 지극히 유리하게 작용해 한계를 갖고 있거나 입장 차이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같은 룰이라도 환경이나 시대 변화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도 하고, 태생부터 헛점투성이인 것도 있다.
지난 5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한 경기 시흥 은계지구 공동주택용지 B5블록 청약에는 613개 업체가 몰렸다. 앞서 지난 3월 공급한 인천시 서구 가정지구 공동주택용지 입찰에도 437개 업체가 경쟁해 당첨자를 가렸다. 분양시장이 호조를 보이다보니 수도권, 지방 가릴 것 없이 공동주택용지 청약경쟁률이 치솟는 것이다.
통상 공공택지 내의 공동주택용지는 추첨방식으로 매각한다. 승패를 운에 맡기는 추첨방식이다보니 시흥 은계지구에서는 613개 업체가, 가정지구에서는 437개 업체가 제대로 경쟁했다면 문제될 것이 없을 게다.
그런데 한 건설회사가 수십개의 자회사(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청약에 나서 당첨확률을 높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너도나도 페이퍼컴퍼니 만들어 당첨 확률을 높이는데 다른 한편의 기업들은 그런 방식을 쓰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라면 룰에 대한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공공주택용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주택등록 사업자 요건은 까다롭지 않지만 대형 건설업체의 경우 계열사 편입 등의 문제로 자회사 설립이 어렵다).
4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은 이 같은 룰의 헛점을 보완한 것이다. 개정안 내용은 추첨 방식으로 공급받는 공공택지내 공동주택용지에 대해 2년간 전매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매 제한을 둔 건 실제 사업을 할 실수요자들만 땅을 사라는 의미로 전매제한 특례제도를 이용해 일부 업체가 땅을 선점한 후에 모회사나 다른 계열회사 등에 전매해왔던 악용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룰은 바뀌었지만 양쪽 다 못마땅하다는 표정이다. 대형 건설업체에서는 공공택지 내 공동주택용지는 계열사를 포함해 '1사 1필지'로 응찰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추첨결과 선정된 업체의 전매를 원천적으로 금지시키고 만약 이 업체에서 주택공급이 불가능하다면 택지개발사업시행자에게 되팔아 재공모와 재매각 과정을 거쳐야한다고 주장한다. 애초 시행령이 입법예고 됐을때는 전매를 못하도록 했지만 의견수렴과정에서 내용이 바뀌어 개정안 내용이 후퇴했다는 것이다.
수십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그동안 재미를 봐왔던 중견 건설업체 입장은 또 다르다. 체급이 다른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경쟁하는데 같은 룰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게 그들의 얘기다.
이 모든 게 소비자들이 보기에는 밥그릇 싸움일뿐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누가 땅을 사가건 싸고 질 좋은 상품이 만들어져 혜택을 보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룰이 중요한 건 기업들이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해야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결국 소비자에게도 득이 된다는 점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보완하고 수정해 나가야한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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