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정부는 4일 국무회의를 열어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국민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임금노동자 입장에서 환영할 일이지만 예상치 못한 선물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하다.
일단 별다른 여론형성 과정 없이 느닷없이 툭 던지는 모양새가 하사품 같아 유쾌하지 않다. 임시공휴일 추진 소식은 박근혜 대통령의 휴가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알려졌는데, 대통령의 휴가 구상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이후 침체된 내수경기를 진작시키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론은 부정적이다. 대다수 직장인들이 이미 여름휴가를 다녀왔기 때문에 또 휴무를 주장하기 민망한 상황이다. 임시공휴일은 '공무원들만의 보너스 휴가'가 될 가능성이 높고, 내수경기 진작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광복 7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자는 뜻이란 말도 있다. 50도 100도 아닌 70이란 숫자에 왜 그리 큰 의미를 둬야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광복절이 토요일이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렇듯 선물의 이유가 불분명하니 자연스레 억측을 낳는다. 국정원 해킹 파문의 수습책 아니냐는 의심이 대표적이다. 떨어진 국정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방편으로 느닷없는 임시공휴일 카드를 꺼낸 것이란 시중의 분석은 나름 설득력 있다. 길게 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염두에 둔 것이란 생각도 할 수 있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으로 재벌에 대한 반감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광복절특사에 기업인을 포함시키려는 포석이란 분석을 술자리에서 내놓은 사람에게 "그 말이 제일 그럴 듯하네"라는 칭찬이 쏟아졌다.
올해 광복절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은 10년 단위로 꺾인 숫자 때문이 아니라, 갑작스레 찾아온 광복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한 역사를 되새겨야 할 필요가 2015년 현재 매우 높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공무원을 위한 임시공휴일보다 교착상태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는 한일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대통령의 답이다. 일본 총리의 8ㆍ15 담화에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담기지 않을 경우 과거사 문제를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온 박근혜정부가 꺼낼 대안은 무엇인지 국민은 궁금해하고 있다. 압박 전략으로만 일관하다 최악의 상황에 빠진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전향적 해법을 내놓는 것은 임기 전반부 실책을 인정하고 새 후반부를 맞이하기 위한 정부의 책무이기도 하다.
지난 70년간 이 나라의 주인이 과연 누구였는지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올해 광복절을 제대로 기념하는 방법일 수 있다. 어쩌면 미국에서 큰 절을 올린 유력 정치인의 행보나 색다른 대일본 가치관을 선보인 대통령 동생의 '커밍아웃'은 그런 논의가 시작될 기회를 제공해준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이 기회를 살릴 필요가 있지만 원치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할 때 임시공휴일이란 뜻밖의 선물은 "3일 연휴를 줄 테니 복잡한 생각 말고 어디 좀 가서 쉬다오면 광복절은 끝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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