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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野 정쟁에 무너지는 상임위 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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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볼모 잡고 사사건건 대립…지도부 허락해야 법안 처리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여야 정쟁에 상임위 중심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여야 모두 '정책국회'를 표방하면서 상임위 활동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현실은 역주행중이다.


상임위 위상이 추락하는 이유는 여야가 협상과정에서 법안을 볼모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 심사와 처리는 상임위 고유 업무인데, 여야 지도부가 협상에서 법안을 연계하는 방식을 내세우다보니 상임위가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상임위에서 법안을 조율해야할 여야 간사도 원내지도부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상임위의 미약한 존재감은 이번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법사위는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66건의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야당 원내대표와 협의해 소득세법과 지방재정법,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달랑 3건만 본회의에 부의시켜 비판을 자초했다.


법사위는 28일 국회 본회의 개의에 앞서 전체회의를 열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심사해야 하지만 여야 대립에 개회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한 실정이다. 법사위 간사인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원내지도부 협상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상임위가 원내지도부에 좌지우지되는 현상은 공무원연금개혁 과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환경노동위원회를 거친 최저임금법과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지난달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들 법안이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한 것은 여당 원내지도부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중인 관광진흥법 개정안과 연계 처리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관광진흥법은 경제활성화법안 가운데 하나로, 학교 앞 호텔 건립을 허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관광진흥법이 교문위를 통과할 때까지 최저임금법과 고용보험법을 처리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고용보험법 통과가 지연되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실업크레딧 정책까지 영향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고용보험법은 야당 의원이 발의했지만 실업크레딧 실시 근거 규정을 담고 있다. 여당 원내대표가 법의 세세한 내용까지 파악하기가 어렵다보니 결과적으로 여당이 정부 정책을 가로막는 꼴이 되고 말았다.


법안 처리가 여야지도부 협상에 따라 결정되면서 상임위 차원에서 세운 원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법안을 심사숙고해 따진다는 의미로 '본회의가 열리는 날에는 법사위를 열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했지만 당장 28일만해도 본회의에 앞서 법사위 개회 가능성이 커졌다. 법사위 관계자들은 "그동안 충분히 논의한 법안이 대부분인 만큼 본회의와 같은 날 열어도 무방하다"고 강조하지만 위원장이 내세운 원칙이 훼손된 것만은 분명하다.


상임위 위상 약화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개정 국회법이 시행된 이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시한을 넘길 경우 국회 심의 없이 정부 원안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뿐 아니라 각 상임위의 심의권을 약화시켰다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해 말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는 한차례 시한을 넘겨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기도 했다.


정무위 관계자는 "여야 지도부가 전략적인 차원에서 법안을 이용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일이 잦아지면 상임위 차원에서 부지런히 법안을 처리할 이유도 없는 것 아니냐"며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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