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변에서는 보이지 않는 삶의 풍경들이 있다. 대로 뒤편으로, 아니 오히려 대로라는 밖이 아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안'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삶의 진상이 있다. 고공에서 내려다보는 조망만으로는, 몇 개 숫자의 통계로만으로는 볼 수 없는 우리 삶의 진실과 육성이 있는 곳, 골목이 그런 곳일 것이다.
엊그제 도시의 미세한 숨결을 감지하고 들려주는 걸 사명으로 삼는 어느 건축가의 인도로 함께한 서울 구로동 골목길 답사는 그 같은 도시의 삶의 내면을 탐색하는 기행이었다. 그 좁고 미로와 같은 골목에는 우리네 삶의 깊은 곳, 뿌리 같은 것이 있었다.
'근대화의 역군, 여공들'의 흔적을 찾아간 구로동 큰 길들에는 이제 공단과 벌집들이 사라지고 넓은 도로 양편은 고층빌딩과 첨단의 디지털 상호들로 뒤덮여 있었다. 내 기억 속 옛날의 구로는 거기에 없었다. 그러나 골목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곳엔 과거와 현재가 서로 겨루며 공존하고 있었다. 한국인이 떠난 벌집에선 우리의 새로운 이웃이 된 이방인들이 옛 여공들처럼 부지런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고성같이 버티고 있는 벌집의 낡은 시멘트 난간과 벽, 그것은 21세기에 남아 있는 70년대의 삶의 흔적이었다. 아니 저 70년대는 지금에도 여전한 우리의 현재의 삶이었다.
'구로동'이었기에 그곳은 더욱 골목 답사에 마땅한 곳이었다. 구로는 서울이란 도시의 골목과 같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도시의 아픔을 받아내는 곳이었다. 서울의 남부를 횡단하는 도로를 내면서 구로지역 구간만은 길을 건널 수 없게 해 한 동네가 하루아침에 남북으로 분단됐듯 이곳은 다른 지역의 삶을 위해 희생하는 곳이었다. 서울의 그 어느 지역보다 공원을 찾아보기 힘든 구로는 이 도시가 살아가는 데 땀을 흘릴 뿐, 휴식을 취하지는 못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구로는 그 자신이 '도시의 골목'이었던 것인데, 그 골목 안의 골목은 지금 신음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담벼락마다 붙어 있는 '쓰레기 투기' 경고판이 자아내는 살풍경에서 그 신음이 들렸다. 그것은 구로의 신음이면서 서울의 신음이었다. 한 도시의 통증의 하소연이었다.
구로를 개발하는 것은, 아니 도시를 개발한다는 것은 골목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골목의 미로처럼 복잡다단하고 내밀한 사람의 삶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구로(九老)라는 이름에서처럼 사람의 삶의 터전을 개발한다는 것은 9명의 현명한 이들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일이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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