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김주현, 회장기전국레슬링대회서 각각 우승…"어머니 호강시켜 드릴 것"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레슬링 매트에 강한 형제가 나타났다. 한국체대의 김국현(21)과 북평고의 김주현(18). 각각 대학부 자유형 57㎏급과 고등부 그레코로만형 54㎏급에서 최고의 실력을 뽐낸다. 지난달 29일 끝난 회장기전국레슬링대회에서도 함께 우승했다. 두 선수를 모두 지도한 북평고의 김덕호(44) 코치는 "어렸을 때부터 성실함이 남달랐다. 어떤 훈련이든 악착같이 해낸다"며 "엘리트코스를 밟고 있어 향후 성인대표팀 입성이 기대된다"고 했다.
형제는 어머니 도금옥(48) 씨를 호강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매트 위를 구른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어머니지만 형제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가족은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했다. 양강도에서 태어난 김국현은 일곱 살 때 동생의 손을 잡고 두만강을 건넜다. 어머니가 결핵에 감염돼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국경을 넘었다. 김국현은 "북한은 의료 수준이 낮아 결핵에 걸리면 대부분 죽는다. 개구리와 미꾸라지 죽을 쑤어 드려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결단해야 했다"고 했다.
무사히 두만강을 건넜지만 고비는 계속 찾아왔다. 친구를 데리고 오겠다던 아버지가 중국 공안에 잡혀 북한으로 끌려갔다. 김국현은 "한국에 도착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남은 가족의 여정도 위태로웠다. 중국을 거쳐 당도한 베트남의 은신처에 현지 경찰이 들이닥치는 등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맞았다. 김국현은 "어머니가 아프셔서 빨리 옮겨다니지 못했다. 그때마다 우리를 보호해주던 분이 뒷돈을 건네지 않았다면 이렇게 레슬링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몽골을 거쳐 3년여 만에 한국에 들어왔지만 고생은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긴 여정과 결핵 후유증 때문에 일을 하지 못했다. 가진 것 없는 형제에게 레슬링은 희망이었다. 김국현은 "고된 훈련을 참아내니 장학생이 되었고 한국에서 살아낼 경쟁력이 생겼다"고 했다. 김주현은 "열심히 하면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을 형을 통해 배웠다"며 "어머니가 우리를 보며 기운을 차리시고 미소지을 때마다 뿌듯하다"고 했다.
행복은 이제 막 시작됐을지 모른다. 국가대표가 멀지 않다. 김국현은 "내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대비해 훈련하고 있다. 탈북자 출신으로는 최초로 올림픽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다"고 했다. 김주현도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꿈 하나로 힘든 훈련을 버티고 있다. 어머니도 그날을 간절히 바라신다"며 "세계무대에서 꼭 한국을 대표하는 형제로 이름을 날리겠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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