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방이다. 햇볕 잘 드는 방 안에 분홍빛이 감돈다. 책상과 옷장, 옷장 위의 인형들, 전신 거울이 있다. 빨간, 노란색 장우산 두 개가 의자에 걸쳐져 있다. 액자 속 얼굴 스케치와 방 분위기로 보아 여학생 방이다.
또 다른 방이 보인다. 벽에 나란한 사진들과 의자에 걸쳐진 옷은 방의 주인이 남학생임을 알게 한다. 책꽂이의 책들은 이 학생이 일본어 공부를 했다는 것을 유추하게 한다. 피아노와 기타를 좋아하고 악보를 보며 연습도 하는 모양이다.
지난해 4월 15일 방의 주인들이 문을 열고 나갔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 방들은 부재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것은 1년 째 그대로다. 비스듬하게 놓아 둔 컴퓨터 키보드조차 비스듬한 채다. 다만 달라진 것은 방의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기록자원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416 기억저장소'는 지난 1년 동안 희생학생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녹취하고, 아이들의 기록과 사진을 스캔해 정리했다. 기억의 총체로서 3차원의 공간인 아이들의 빈방을 기록하는 일은 사진가들의 몫이었다. 작년 말부터 50여 명의 사진가들이 참여해 학생들의 방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고, 현재도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이 아이들의 방 사진이 전시된다. 김흥구, 이우기, 박승화, 조우혜, 허란 등 다큐멘터리 사진가부터 기자까지 15명의 사진가가 찍은 54개의 각기 다른 방이다. '빈 방'을 통해 세월호 희생학생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진들이다. 빈방에는 ‘주인 잃은 침대’와 ‘주인 잃은 책상’·‘주인 잃은 교과서’·‘주인 잃은 컴퓨터’·‘주인 잃은 인형’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 사진들은 오는 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통의동 류가헌갤리러 전시2관에서, 안산 '416기억전시관'에서는 2일부터 5월 31일까지 전시된다. 희생학생들의 목적지였던 제주에 위치한 '기억공간 re:born'에서는 오는 16일부터 올 해 말까지 희생학생들의 유품 사진이 전시된다. 오마이뉴스 웹페이지에서는 온라인 전시를 연다.
416기억저장소는 "'금요일엔 돌아오겠다'며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됐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답답한 세월이 지나고 다시 찾아 온 잔인한 사월"이라며 "빈 방의 흔적만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비극적 참사와 잔인한 사회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실재적 모습"이라고 밝혔다.
문의 류가헌갤러리 02-720-2010.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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