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할땐 "해외연기금과 달라" 필요할땐 "따라하겠다"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지난해 말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독립 문제가 부각되며 국민연금 수익률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많았다. 주요 연기금 중 수익률이 꼴찌라는 얘기였다.
국민연금은 발끈했다. 단기 수익률 비교는 지양해 달라고 했다. 특히 국민연금은 자신들이 다른 나라 연기금 혹은 국부펀드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흔히 국민연금과 비교되는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ㆍ미국 캘퍼스(CalPERS)는 일부 직업군을 대상으로 하는 직역연금이고 노르웨이 정부연기금(GPFG)은 석유수출로 구성된 국부펀드인 반면 국민연금은 전 국민의 노후보장 기금이라고 했다.
국민연금은 글로벌 연기금을 비교하려면 기금 조성재원 등의 차이를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의 주장은 100% 맞는 말이다. 미국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연금 역할을 하는 연방연기금(OASDI)이 따로 있다. 캘리포니아 지역 공무원은 노후자금으로 일단 연방연기금을 받고 추가로 캘퍼스 기금을 받는다. 국민연금과 캘퍼스 기금은 태생부터 운용방식, 운용목표까지 전혀 다르다. 기자가 국민연금의 해명 자료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이유다.
어리둥절해진 건 국민연금의 헤지펀드 투자방안 보고서를 보면서다. 국민연금은 헤지펀드 필요성을 강변하며 주요 근거로 해외 연기금의 헤지펀드 현황을 제시했다. 다른 나라 연기금을 보니 대부분 헤지펀드를 하고 있으니 우리도 해야겠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이 나열한 해외 연기금은 네덜란드 ABP, 미국 캘퍼스, 캐나다 연금투자이사회(CPPIB) 등이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이 '우리와 비교 말라'고 했던 그 연기금들이다.
돌이켜보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운용역들의 성과급을 늘리겠다'고 할 때도, '해외 대체투자를 확대하겠다'고 했을 때도 비교 대상은 앞의 그 연기금들이었다. 국민연금은 "해외 주요 연기금ㆍ국부펀드와 비교하면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비중 및 투자 대상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며 기금운용위원회에 투자비중 확대를 요구했다. 불리할 때는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고 하고, 필요할 때는 '그들이 하니 우리도 하겠다'고 한다.
원칙이 없는 게 문제다. 기금운용에 있어 최우선 원칙은 안정성이고 그 위에 수익성이 있어야 한다. 원칙이 이랬다저랬다 하면 기금운용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승종 기자 hanar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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