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기획단 위원장 오늘 사퇴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정부의 건강보험료 개편안 철회의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년7개월간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연구해온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의 이규식 위원장이 2일 정부 방침에 반발해 자진 사퇴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배포한 '사퇴의 변'이라는 글을 통해 "현 정부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의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기획단 위원장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1년6개월을 논의했는데 (정부가)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백지화한 것은 무책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당초 기획단은 정부의 건보 개혁 추진을 촉구하며 집단 사퇴할 예정이었지만 기획단 내 정부 측 위원 2~3명의 반대로 이 위원장 혼자 사퇴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했다. 기획단에 참여하고 있는 사공진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획단 위원들 모두 심경은 함께 사퇴한 것"이라며 "내년에는 선거(총선)가 있는 만큼 올해가 건보료 개편의 최적기다. 발표도 못 하고 쓰레기통에 넣어진 기획단의 개선안을 다시 꺼내 시행하자고 장관에게 탄원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건보 부과체계 개선을 목적으로 2013년 7월 출범된 기획단에는 건보 학계와 연구기관 등 전문가 16명이 참여하고 있다. 기획단은 올 초까지 총 11차례의 회의를 거쳐 건보료 개편을 위한 7가지 모형을 마련했다. 고액 자산가가 직장가입자로 편입돼 무임승차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또 송파 세 모녀처럼 소득이 전혀 없어도 나이가 많거나 자동차가 있을 경우 건보료를 부과하는 방식을 고쳐 저소득층의 건보료 부담을 줄이고, 임대소득 등 월급 이외의 소득에 건보료를 매겨 고소득층의 건보료를 인상하는 내용도 담겼다. 특히 어떤 모형이든 건보 적자를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9일 이 같은 내용의 기획단 개편안을 공개키로 했던 보건복지부가 돌연 이를 백지화하면서 여론이 악화됐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에 따른 여론 악화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건보료가 오르는 일부 지지층 이탈을 우려한 청와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기획단의 반발에 복지부는 당혹해하고 있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기획단을 달래기 위한 오찬 자리를 제안했지만 다수 위원들이 불참하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만남 자체가 불발됐다. 일각에선 복지부가 청와대를 지나치게 의식해 논란을 자초했다고 꼬집고 있다.
한편 정부의 건보료 개편안 철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의 재추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정부는 전날 정책조정협의회를 신설하고, 청와대와 정부 간 정책협의와 조율을 강화키로 했다. 여권 관계자는 "어제 신설하기로 한 정책조정협의회에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이 우선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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