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협, 마지막 평가전 후반 47분 쐐기골…국가대표 첫 발탁, 데뷔전에서 데뷔골
전반 내내 손흥민 뺀 나머지 공격수 부진…후반 투입 후 원샷, 대표팀 원톱 고민 지워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허허허!"
프로축구 상주 상무의 박항서 감독(56)은 군인 신분으로는 유일하게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출전한 국가대표 공격수 이정협(24)의 얘기를 꺼내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교체로 들어가는 것만 확인하고 골을 넣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면서도 "국가대표 데뷔 경기에서 골까지 넣어 대표팀에서 가치가 올라가고 스스로도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 감독은 상주에서 지난해 9월까지 함께 생활한 이근호(30·엘 자이시)에게 이정협의 대표팀 적응을 도와줄 것을 여러 차례 당부했다고 한다. 그만큼 관심을 기울였던 새내기 국가대표가 데뷔경기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자 흡족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이정협도 "출전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최대한 집중하려고 했는데 운 좋게 골을 넣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정협은 4일 호주 시드니의 퍼텍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쐐기 골을 넣어 2-0 승리를 이끌었다. 후반 27분 교체로 들어가 20여분을 뛰면서 추가시간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남태희(24·레퀴야SC)와 김창수(30·가시와 레이솔)를 거친 패스를 벌칙구역 안쪽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그물을 흔들었다. 상대 골키퍼 왈리드 압둘라(29)와 수비수 마제드 알 마르사디(31), 오사마 하우사위(31) 등 세 명이 골대 앞을 에워쌌으나 공은 빈틈을 통과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61·독일)은 "공격적으로 경기하는 상황에서 이정협을 투입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기대한대로 골이 나왔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박 감독은 "(이)정협이는 완성된 선수가 아니라 계속 발전하고 있는 단계다. 공에 대한 집중력이 좋고 상대 수비를 등지는 기술과 공중 볼 싸움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이는 슈틸리케 감독이 강조한 타깃형 스트라이커(대개 장신 선수로서 날개나 미드필드의 동료들이 띄워올리는 크로스를 최전방에서 받아 슛이나 패스를 하는 선수)로서의 자질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달 4일 아시안컵에 대비한 국내 전지훈련 참가 선수 명단(28명)을 발표하면서 이정협을 처음으로 대표팀에 선발했다. "K리그 클래식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다섯 차례 정도 지켜봤고, 주전은 아니지만 경기당 20~25분을 뛰면서 매우 흥미로운 움직임을 보여줬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제주 서귀포에서 일주일(12월 15~21일)동안 전지훈련을 하고 확정한 아시안컵 최종 명단(23명)에도 이정협을 포함시켰다. "그동안 찾던 전형적인 타깃형 스트라이커로 전방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결국 자신이 발굴한 의도에 맞게 사우디를 상대로 교체선수의 임무를 부여하면서 경기 분위기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이정협의 득점은 상대 수비수의 자책골로 기록된 선제골과 달리 동료들의 패스를 통해 나온 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표팀은 그가 투입되기 전까지 2선 공격수들이 교대로 골 기회를 노리는 '제로톱' 전술을 선보였다. 원톱이 확실하지 않은 반면 공격형 미드필더와 좌우 윙어로 뛸 수 있는 선수들이 많다는 점에서 택한 카드다. 그러나 슈팅 다섯 개를 시도한 손흥민(23·레버쿠젠)을 제외하고는 위력이 없었다. 더구나 아시안컵 본선에서 밀집수비로 맞설 상대팀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이정협처럼 힘과 체격을 바탕으로 골대 앞에서 수비수와 경쟁할 스트라이커가 필요하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45)은 "갑자기 대표선수가 된 이정협이 모의고사를 통해 골을 넣고 감각을 끌어올렸다는 점이 대표팀 입장에서는 반길만한 결과"라고 했다. 박 감독은 "워낙 성실하고 축구밖에 모른다. 성격이 외향적이라 선임들과도 잘 어울린다. 공을 지켜내고 상대 수비를 속이는 동작을 보완한다면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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