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과 상관없는 교육 현실, 로고만 부착하면 명문대 졸업장, 미국은 우즈도 '중퇴'
[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스타급 선수들은 대학에서 서로 오라고 난리입니다."(골프선수 매니저)
대학의 골프선수 마케팅이 축구나 야구 못지않다. 입시철만 되면 마치 스토브리그를 연상시키는 치열한 유치전이 전개된다. 선수들에게는 기업과의 스폰서계약으로 돈을 벌고, 대학에는 이름만 걸어놓고 졸업장까지 챙길 수 있는 호기다. 일반 수험생들에게는 당연히 달나라 이야기다. 최근 고려대가 리디아 고의 입학을 허가하면서 골프선수들의 특례 입학이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리디아 고와 고려대"= 리디아 고의 국적은 뉴질랜드, 2015년도 재외국민 특별전형으로 고려대 심리학과에 합격했다. 대학 측은 "리디아 고는 체육특기생이 아니라 일반 학생 자격"이라며 "운동선수로 활동하고 싶으면 체육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선수 등록이 가능하다"고 했다. "온라인 강의 수강과 리포트 등으로 학점을 이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리디아 고는 그러나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고 1년 내내 전 세계를 돌아다녀 사실상 출석이 불가능하다. 당초 스탠퍼드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미국에서는 투어를 병행하면서 졸업하기가 쉽지 않아 국내 대학을 선택했다. "다른 한국 선수들도 대학에 적을 두고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문제가 있다면 리디아가 아니라 한국 대학의 시스템"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현실이 그렇다. 고려대는 이미 김효주(19)를 비롯해 김세영(21), 전인지(20·하이트진로), 이정민(22·비씨카드) 김민선(19), 노승열(23·나이키골프) 등을 보유하고 있고, 이들 역시 국내 투어가 매주 이어져 정상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없다. 연세대는 장하나(22)와 백규정(19), 김비오(24·SK텔레콤), 김민휘(22), 김우현(23·바이네르) 등이, 성균관대는 고진영(19)과 이민영(22), 이미림(24·우리투자증권) 등이 적을 두고 있다.
◆"돈 대신 졸업장?"= 대학의 스타 선수 영입은 기업이 선수를 통해 홍보 활동을 펼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요즈음에는 동문회 파워까지 동원한다. 고려대는 허광수 대한골프협회(KGA) 회장의 모교다. 막강한 '골프 고대'를 구성하는 데는 허 회장의 입김도 작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스타급 선수들에게는 장학금에 교수직까지 보장해 주면서 모셔온다. 선수들은 그저 소속 대학의 로고를 몸 한구석에 붙이면 된다. 출석 등 학사관리에 편의를 봐주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 프로선수들은 보통 모자와 가슴, 어깨 등에 후원 기업의 로고를 붙인다. 돈을 받는 대신 기업 로고를, 학점과 학위를 받는 대신 학교 로고를 달고 다니는 셈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우리 대학은 로고를 부착하는 대가로 선수에게 특혜를 주지 않는다"며 "명문대의 경우에는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로고를 부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또 다른 대학에서는 "학교 홍보를 위해 선수가 로고를 다는 대신 장학생 선정 등 혜택을 준다"며 "출석 등 선수들에 대한 학사관리 특혜는 골프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엘리트 스포츠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점은 어떻게?"= '공부벌레'로 소문난 전인지는 "투어가 없을 때는 반드시 출석하려고 한다"며 "치열한 경쟁을 잊을 수 있어 캠퍼스가 그리울 때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출석일수를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 국내 투어의 경우 4월부터 11월까지 쉬는 주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는 1월부터 시작한다. 학점은 결국 형식적인 리포트로 대체된다.
한 대학교의 골프학과 강의를 맡고 있는 A강사는 "특기자들은 대부분 B학점 이상을 준다"며 "선수를 관리하는 조교들이 각 과목의 강사나 교수에게 협조문을 보낸다"고 귀띔했다. "조교들이 숙제를 대신해 주는 경우도 있다"는 충격적인 현실도 털어놨다. 일반 학생 입장에서는 선수들이 수업시간에 대회에서 돈을 버는 동시에 자동으로 졸업장을 거머쥐는 일이 억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 조차 스탠퍼드를 중퇴했을 정도로 학사관리가 엄격하다. 한국은 반면 초, 중, 고교부터 수업을 거의 듣지 않는 빗나간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연습도 수업이 끝난 오후에나 할 수 있다. 주니어대회는 주말에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샷 건 방식으로 진행하거나 방학을 활용해 개최한다. 주니어 때부터 수업과는 거리가 멀어진 교육현실이 결국 겉만 번지르르한 '스펙'을 위한 대학 졸업장을 양산하고 있다.
손은정 기자 ej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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