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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서재에서]효율의 세상이 文·史·哲을 죽였다…대학을 가출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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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서재에서]효율의 세상이 文·史·哲을 죽였다…대학을 가출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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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용 논설고문(얼굴)의 '리더의 서재에서'는 CEO와 경제지식인들의 지적보고(知的寶庫)를 탐방해 깊이있는 성찰의 결과들을 함께 음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윤 고문은 언론사 기자 출신으로 국방홍보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으며 저서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등을 출간했습니다.


[아시아경제 윤승용 논설위원] 교수직 버리고 글 쓰는 사람으로 돌아온 '거리의 인문학자' 김경집

어릴 적부터 글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거리의 인문학자' 김경집은 좋은 외국 소설책을 읽기 위한 방편으로 영문학을 전공한 후 다시 철학에 천착했다. 서른 살 무렵,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마음껏 책 읽고 글 쓰며 문화운동에 뜻을 두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실제로 두 번째 25년을 마친 뒤 미련없이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충남 서해안 바닷가에 조그만 작업실 수연재(樹然齋)를 짓고 말 그대로 '나무처럼' 살고 있다.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곳곳의 특강 요청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경집씨를 서울 합정동의 한 북카페에서 만났다.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는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 때부터 틈날 때마다 책을 끼고 살았는데 그때 언젠가는 내 책을 쓰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먼저 많이 배워야 할 것이라 여겼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스펀지처럼 섭렵했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배움이 늘면서 학자가 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학부 때 영문학을 하다 대학원에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꾼 이유는.
▲고교 때부터 그런 계획을 가졌던 것 같다. 궁극적으로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먼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사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었고, 또한 작가가 되고 싶은 꿈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문학을 공부하고 나중에 대학원에서는 철학을 공부할 계획이었다. 영문학을 선택한 것은 세계의 문학을 넓게 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 문학에는 논리적 사유의 힘이 부족한 것 같고, 철학에서는 논리와 사유의 힘만 강조되지 정작 삶에 대한 성찰과 행동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것 같아서 늘 양쪽에서 변방인의 느낌으로 살았다.

-<인문학은 밥이다>라는 매우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내고 역시 같은 주제의 강연을 자주 하는데 요즘같은 신자유주의와 물신주의가 횡행하는 시절에 정말 인문학이 밥이 될 수 있는가.
▲문제는 지금 왜 인문학을 하고 있는지, 왜 인문학이 이 시기에 뜨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점이다. 그 시작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붕괴된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서 비롯되는데, 여전히 그 시기를 경제 문제로만 국한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1997년 이후 10여년 동안 자기계발-위로-힐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더 이상 예전 같은 성장의 기회가 박탈되면서 자연스럽게 삶을 다운사이징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나는 뭐지? 내 삶은 뭐야?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인문적 성찰과 맞닿은 것이고, 거기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리고 1997년 이전의 한국사회는 속도와 효율만 강조하는 'fast moving 구조'였는데 그 이후는 창조, 혁신, 융합의 'first moving 구조'로 바뀌었다.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면 한국 사회는 망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틀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고,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인문학은 내가 주체가 되고, 인간이 주인이 되어 무한한 상상력과 융합으로 창조와 융합의 21세기 어젠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인문학이 제대로 된 밥이 될 수 있고, 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리더의 서재에서]효율의 세상이 文·史·哲을 죽였다…대학을 가출한 인문학



-사회에서는 인문학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는 데 비해 정작 대학에서는 '인문학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1997년 이전의 체제는 속도와 효율만 중시했기 때문에 인문학이 고사되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되는지 등의 물음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여전히 세상은 예전의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새로운 프레임의 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막게 될 것이고, 우리의 변화의 동력을 상실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다른 하나는 학자들 스스로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속도와 효율만 강조하던 시대의 막바지에 대학의 인문학 과정들이 축소되자 교수들이 이 문제를 제기했고 정부에서는 'BK(두뇌한국)'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정작 그 기금들은 학자들로 하여금 현장과 시대에 대한 성찰과 노력보다 기금 지원을 받기 위한 논문 제작에 몰두하게 만들었고, 결국 역설적으로 인문학을 자생시키는 힘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여행을 '서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행을 강조하면서도 혼자서 여행하라던데 그 이유는.
▲여행은 분명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사유의 이동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여행은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 어울려 가는 방식이다. 물론 마음에 맞는 이와 함께 나누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혼자 사유할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서 혼자 떠나는 여행을 권한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고독을 누리는 법을 상실했다. 기꺼이 고독할 수 있어야 자신의 삶을 농밀하게 만들 수 있다.


-고전을 읽으라고 주장하던데 도대체 '고전'이란 무엇인가.
▲고전은 그저 오래된 책이거나 두꺼운 책을 뜻하는 게 아니다. 베스트셀러 1000권보다 고전 한 권이 더 낫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고전은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대가(大家)적 시선'으로 풀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과 삶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대가적 시선을 공유할 수 있는 고전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텍스트의 권위에 눌리면 안 된다. 고전을 읽을 때 반드시 그 당시의 상황과 배경, 그리고 맥락을 짚어봐야 하고, 그것을 현대의 삶에 조명해봐야 한다.


-단원 김홍도의 '씨름'이란 그림을 가지고도 흥미로운 논지를 펴던데.
▲우선 그 그림을 보면 나오는 반응은 여러 '지식들'이다. 누가 그렸고, 어떤 구도와 구성인지 등. 그러나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 그림을 보면서 물어야 한다. 묻는 건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인문학의 시작은 내가 주인이 돼 묻는 데에서 출발한다. '누가 이길까?'라는 싱거운 물음이 이 그림이 담고 있는 무한한 이야기들과 의미를 도출한다. 그 프레임을 위해 딱 맞는 자료이기에 자주 사용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에서 사람을, 삶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의 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약에 당신이 양반이고, 이기고 싶어서 이만기 같은 뛰어난 씨름인을 데려다가 배우고 훈련했다 가정했을 때 이길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져 줄 것인가'를 물어본다. 그 물음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가톨릭대학 교수직을 과감히 그만둔 이유는.
▲서른 즈음에 막연하게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마음껏 책 읽고 글 쓰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50살이 넘으면서 그 꿈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여러 해 고민하다가 재작년에 실행에 옮겼다.


-집필실 옥호인 수연재의 뜻은.
▲수는 나무 수(樹), 연은 그럴 연(然)인데 말 그대로 '나무처럼' 살고 싶어서 지었다. 세상을 바꾸는 진짜 힘은 조용하고 의연한 삶과 사람에게서 나온다.


-여러 책을 저술했던데 굳이 가장 아끼는 한 권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인문학자로서 내 정체성을 분명하게 제시한 <인문학은 밥이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낸 지 1년 만에 벌써 5쇄를 찍을 정도로 제법 나갔다.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미친 책을 한 권 들라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이다. 그 안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람과 삶의 모든 면목이 다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음악, 미술도 인문학이라고 주장하던데.
▲인문학은 단순히 문사철(文史哲)이 아니다. 그것은 19세기에 여러 분과학문들이 독립하고 남은 종가(宗家)처럼 남은 본연 학문에 대한 임시적 분류였을 뿐이다. 인문학은 주제도 대상도 목적도 주체도 사람인 모든 학문 분야를 망라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도 인문학의 범위에 들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물리학 또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힉스물리학을 배우면서 물질과 세계 그리고 우주를 힉스물리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과 삶은 어떻게 새롭게 해석되는가를 물어본다면 그것 또한 인문학이 되는 것이다.


-본인에게 인문학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다양한 분야의 제반 학문들을 사람을 주제로 환원해 재해석하는 종합적 사유의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아마도 그런 점에서 내가 대학에 재직할 때 담당했던 '인간학'이라는 과목이 그런 시각을 만들었을 것이고, 그런 훈련과 해석을 통해 보다 넓고 다양하면서도 융합의 가능성을 도출하는 인문학 공부에 매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김경집의 읽어보니, 좋던데요


◆<인간등정의 발자취> 제이콥 브로노우스키/바다출판사= 원시 인류의 진화부터 현대 유전학의 발전까지 엄청난 분량의 내용을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핵심의 정곡을 짚어내는 분석과 날카로운 해석의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책세상=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그 무게와 힘은 결코 가볍지 않다. 드레퓌스 사건을 인간 지성과 정의에 대한 대전환점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격문 형태의 글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까치글방= 과학은 어렵고 딱딱하며 나와 별 상관도 없다고 느끼거나 읽는 데 들이는 공력에 비해 누리는 효용은 떨어진다고 여기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보라.


◆<걷기 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현대문학= 걷기라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위가 얼마나 관능적이고 지적이며 실존적인지 깨닫게 되면 삶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지게 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람과 삶의 모든 진면목이 다 드러나 있다.


◆김경집 작가는…
뀬1959년 충남 대천 출생 뀬서울 명지고, 서강대 영문과,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졸 뀬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전) 뀬한국출판평론상(2010) 수상 뀬 저서 <인문학은 밥이다> <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 <나이 듦의 즐거움>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등






윤승용 논설위원 yoon6733@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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