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내치(內治)와 거리를 둔 채 외교ㆍ통일 등 큰 그림 아젠다로 국정의 중심을 옮기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순방에서 돌아온 뒤 여당발 개헌론이나 판교 공연장사고, 공무원연금 개혁 등에 의견을 낼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21일 열린 제46회 국무회의는 애초 박 대통령이 주재할 차례였지만 정홍원 국무총리가 진행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30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이후 3회 연속 정 총리에게 의사봉을 맡겨왔다. 원래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번갈아 주재하는 게 내부 방침이다. 박 대통령이 한 주는 수석비서관회의, 한 주는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식이다. 그러나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는 2주째, 국무회의는 3주째 열리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2주 간격의 회의 주재 방식이 바뀌거나 하진 않았다고 밝혔지만, 여야 합의로 세월호 이슈가 정리 국면에 들어선 뒤 박 대통령의 '내치와 거리두기'가 본격화 됐다는 시각이 있다. 국내 현안에 대해 의견을 피력해야 할 회의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런 행보에는 세월호특별법을 포함해 개헌론, 공무원개혁 등은 정치권이 중심이 돼 해결해야 할 사안인 만큼, 대통령이 나서 논란을 증폭시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대통령마저 논란에 발을 담글 경우 집권 중반기 핵심 아젠다로 삼고 있는 창조경제 활성화, 통일대박론 등을 추진할 동력이 약해질 것이란 우려다. 특히 개헌론의 경우 박 대통령은 "경제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며 논의가 시작되는 것 자체에 반대의견을 낸 바 있다.
9월부터 12월까지 국제회의가 다수 몰려있다는 것도 배경이지만, 박 대통령의 관심은 특히 외교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11월 주요20개국(G20) 회의 참석차 호주를 방문하기에 앞서 한ㆍ호주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돼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지난 19일 이탈리아 순방성과를 발표하면서 다소 별개 사안인 한ㆍ호주 FTA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중을 언론에 전달했다. 박 대통령의 관심이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또 외교 현장에선 북한의 개방과 인권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거론하며 통일대박론의 '글로벌 이슈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애초 12월 열리기로 돼 있던 통일준비위원회 회의를 두 달이나 앞당겨 지난 13일 개최한 것도 박 대통령의 '다급한'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박 대통령은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탕자쉬안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접견하고 북한문제 해법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또 같은 날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과 만나 한일관계 개선에 대해 논의한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