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좋은 것은 제너럴모터스(GM)에도 좋고 제너럴모터스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
1953년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GM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찰스 윌슨이 미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국방장관으로서 내려야 할 결정이 GM의 이익에 배치될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답변한 유명한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GM의 파산 직전에도 다시 나온 말로서 기업과 국가 간의 우호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 말은 미국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는 한국에서도 통할 수 있는 말이다. 미국의 GM 대신 한국의 현대자동차를 바꿔 넣으면 그렇다. 적어도 국가의 경제정책은 현대차에 유리한 방향으로 추진돼 왔고 그 배경에는 국민들의 묵시적 지지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차는 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육성시책의 혜택을 받았고 1980년대 이후엔 외국산 자동차 수입억제책의 도움을 받아 국내 시장을 지킬 수 있었다. 최근 들어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나 고환율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당사자가 바로 현대차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현대차는 마치 가난한 집의 장남처럼 나머지 형제들의 희생 속에 모든 배려와 지원을 아낌없이 받아 오늘날의 성공을 이뤄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맏아들 현대차는 이제 가족을 배신한 맏아들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른바 현대차 리스크다.
최근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는 제목의 책(박태주 저)이 현대차 파업을 계기로 관심을 끌고 있지만, 필자는 노사관계를 떠나 한국경제의 모든 문제가 현대차에 농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을 비롯한 한국의 노사관계 문제가 농축돼 있는 것은 물론 재벌체제, 독과점, 해외투자와 설비투자 부진, 일자리창출 기피 등 한국경제가 당면한 대부분의 문제를 현대차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내수부진과 가계부채 등 한국경제의 당면과제의 근본 원인인 일자리 문제는 현대차를 떠나선 얘기할 수 없다.
우선 현대차는 국내 일자리를 늘리지 않고 해외 공장 증설에만 적극 나서고 있다. 연내 착공 예정인 중국 충칭과 창저우 공장이 완공되면 각각 13, 14번째 해외공장이 된다. 반면 국내 공장증설은 아득한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 국내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던 게 당연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인 현대차가 국내에 공장을 증설하지 않는 상황하에서 일자리창출은 공염불이 되고 만다.
수출을 위해선 해외 공장 건립이 필요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화를 통한 생산성 증대 등 근본 문제를 제쳐두고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키 어렵다.
회사는 노조와의 진정한 대화를 포기한 채 해외공장에만 매달리고, 노조는 '있을 때 벌자'는 심정으로 모든 역량을 임금에만 집중하는 '전투적 경제주의'를 택하는 것이다. 국내공장 증설 중단과 해외공장 증설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조로선 고용안정을 포기하는 대신 고임금을 누리는 결과가 된다. 박태주 교수가 책에서 현대차 노사관계의 본질은 담합이며 노사 모두 패자가 되고 있다고 결론 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로 적당히 눈치보기만 한다는 얘기다.
설비투자부진-일자리 부족-가계부채 증가-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사실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현대차가 그 중심에 서 있다. 누구를 위한 수출이고 해외투자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초이노믹스가 약발이 다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단기적인 대증요법을 쓰면서 일자리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시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예견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현대차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가난한 집 맏아들처럼 모든 지원을 받았지만 노사 양측 모두가 제 몫을 챙기기에만 급급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는 현대차를 어찌 할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 선순환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최성범 우석대 신문방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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